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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사관생도가 까까머리 투사가 된 사연

보리아빠 이원영 2007. 7. 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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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의 亂] 모범생 사관생도가 '까까머리 투사'가 된 사연
[노컷뉴스 2007-07-25 07:28]

[21일간 홈에버 상암점 점겅농성 이후 구속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
"쾌활하고 태권도를 해서 상당히 성격이 털털한 편이에요. 뒤끝은 없었는데 단점을 말하자면 좀 덜렁대고 꼼꼼하지는 못한 편이었습니다."(육사 동기생의 말)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시민이자 만년 대기업 과장. 노동문제를 남의 일로만 생각해온 평범한 성격의 한 시민이 대한민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이랜드 비정규직 문제’의 한 복판에 서 있다.

홈에버 상암점을 21일 동안 점거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이랜드 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

2002년 12월. 까르푸(현 홈에버) 중동점 노동조합에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다’는 내용의 일상적인 ‘가입 지원서’. 하지만 메일을 보내온 사람은 보통 ‘간부급’으로 인식되는 청과야채 담당 과장이었다.

“처음에는 프락치가 아닌가 의심했어요. 물론 과장은 노조에 원칙적으로 가입할 수는 있지만 노조 가입을 하면 승진이나 인사고과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대부분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든요”(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 이경옥 씨) 게다가 청과담당 과장이라는 이 사람은 직원들 사이에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 직고용한 직원(정규직)과 파견 직원을 차별대우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는데 이 사람은 지금까지의 관례를 무시하고 동등하게 대했기 때문에 정규직원들의 불만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한 ‘만년 과장’의 사연은 따로 있었다.

당시 까르푸 중동점의 프랑스인 점장은 과장에게 ‘나이가 너무 많으니 데리고 있던 10여 명의 주부사원들과 협력업체 파견 사원을 전부 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던 과장은 결국 노조에 가입신청서를 냈다. 노동운동에 별반 관심도 없던 김경욱 씨는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노조에 발을 들여놓았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대장으로 예편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인 김씨에게 까르푸는 보통 회사일 뿐이었다. 제대 뒤 ‘외국계회사’라는 말에 대우가 좋을 것 같아 무작정 발을 들여놓은 곳이 바로 까르푸.

“그때는 까르푸가 뭐하는 회사인지도 잘 몰랐어요. 외국계회사라니까 그냥 들어갔던 것 뿐이죠. 들어가고 보니까 유통업 하는 회사더라고요”(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 김경욱 씨) 하지만 노조에 보낸 메일 한 통은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뒤바꿔버렸다.

2003년 5월부터 까르푸 중동점 노조가 임금인상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시작했던 것. 당시 사측은 전체 6천 명 직원 중 60명이 파업을 하자 ‘직장 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맞섰다. 10여 일간의 파업은 결국 몇 년간 동결됐던 식대와 교통비 만 원씩 오른 정도로 끝이 났다.

김 씨의 삶은 그때부터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사측에 제대로 ‘미운 털’이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중동점에서 노조 사무국장을 했다는 이유로 김 씨는 여러 점포를 전전하다 결국 까르푸 계산점의 완구 코너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물론 승진의 꿈도 접었다.

까르푸 노조 위원장을 거쳐 결국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 씨. 원래는 하루만 항의의 의미로 점거농성을 벌이려고 했지만 역시 또 ‘자의반 타의반(?)’으로 20여 일간의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숨막히는 줄다리기 끝에 협상은 결렬되고 결렬 다음날 공권력이 투입됐다.

“사실 위원장님한테 제일 미안하죠. 하루만 하자고 하셨는데 우리가 등 떠밀어서 20여 일 동안 하게 된 거라서요”(공권력 투입 하루 전 매장 점거중이던 계산대 직원) 이후 위원장을 제외한 전원 영장 기각으로 이랜드 사태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25일)로 사흘 째. 여전히 이랜드 사태는 노사 양측이 양보없는 줄다리기를 계속 벌이고 있다.

“우수한 성적의 모범생에 회사에서도 착실한 과장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총 잘 쏘는 보수적 모범생 육사출신이 노동조합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사람을 해고를 해도 너무 비인간적으로 해고해서, 자신의 국가관과 양심에 비춰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랜드 사태는 이 양심에 정면으로 반(反)했습니다...”(인터넷에 올라온 김씨의 육사 후배가 남긴 글) CBS사회부 강현석 기자 wicked@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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