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갈기

아버지 칠순에 즈음한 단상

보리아빠 이원영 2009. 9. 23. 00:54

아버지의 칠순에 즈음한 단상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이 되었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잘하기는 너무도 힘이 든다.

오남매 가운데 맏이인 나는 장남 콤플렉스가 심하다.

가족들에게 자주 미안하고 어깨위에 뭔가 무거운 것을 지고 있는 듯한 부담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그런다.

장남이 잘하면 동생들도 다 잘하게 되어 있다라는 말을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 까불대던 내 성격이 사춘기 이후 내성적이고 무겁게 변한 이유 가운데 나는 가족성원 속의 내 위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곤 한다.


세월 앞에 모든 이들은 평등해서 아버지의 나이테도 벌써 일흔이 되었다.

내일모레 일가 친척들이 모여 아버지 칠순잔치를 조촐하게 한다.

아버지는 양평의 산골마을에서 평생 땅을 일구고 사신분이다. 꼬장꼬장한 선비처럼 아버지는 매우 고지식하시다. 술은 애시당초 못드시고 지금은 담배도 피우시지 않으신다.

초등학교 졸업학력이 전부이고 농사짓는 일을 한번도 손에 놓으신 적이 없으시지만 당신의 천직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들 앞에서 한번도 얼굴 붉히며 다투는 모습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허툰 행동도 안하셨다.

두분은 칭찬의 달인들이시다. 오남매를 키우면서 칭찬으로 일관하셨다.

오히려 그런 칭찬이 때론 격려가 되고 채찍질이 되었다.

결혼하여 자식들을 키우면서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직 건강한 편이시고 앞으로 건강을 잘 유지하시면 장수를 누리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십년 고된 농사일의 결과로 다리도 아프시고 몸의 상태가 예전같지는 않으시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워낙 낙천적인 품성이 생활에 배어있어서 아직도 자식들에게 든든한 언덕역할을 하고 계신 것을 자식들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도 부모님처럼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고 싶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


자식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어서 품안에 품으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시는 것처럼 간섭보다는 격려하고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으로 등대가 되어주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쉽지만 아버지의 칠순에 못난 자식들은 드릴 것이 별로 없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이, 형제지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제일 큰 효도라고 생각한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돈많은 부자가 되기보다는 착한 사람, 마음 부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버지는 음력으로 7월8일에 태어나셨다. 그래서 전날인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에는 항상 비가 내리곤 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몇 년전부터는 그런 통상적인 날씨의 흐름도 정확도가 낮아지고 있다.


대학 다닐때 나는 취직하면 한달에 백만원씩 드리겠다고 어머니한테 큰 소리를 치곤 했다.

그런데 나는 번듯한 직장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학졸업과 함께 시민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작은 용돈도 못드리고 있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항상 고맙다, 고맙다고 하신다. 자식이 주는 아주 작은 선물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손주가 보고싶어 자식보다 먼저 전화하시는 아버지에게 항상 미안할 따름이다.

자주 찾아 뵙고 싶지만 항상 바쁘다는 이유로 고향방문을 미루곤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바쁘게 사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며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얼마나 손주들이 보고 싶으신지를.


예로부터 자식들은 항상 부모가 돌아가시면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자식들은 줄어들고 거꾸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는 시대가 되었다.

마음처럼 부모 모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항상 죄송할 따름이다.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의 인생에 얼마나 더 많은 기쁨을 드릴 수 있을지 칠순 잔치를 앞두고 더 고민이 된다. 

 

*아버지 칠순 며칠전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