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많은 우리 어머니
인정 많은 나의 어머니
지난 주 일요일 어머니 생신 때문에 남매들이 양평에 모였다.
토요일 오후에 미역과 쇠고기, 그리고 과일, 생선 등을 사가지고 시골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 아버지는 마을회관에 계시다가 집으로 오셨다. 시골의 마을회관은 동네어르신들이 난방비도 아끼고 텔레비전도 보고, 화투도 치는 사랑방이다. 부모님들은 몇 달 사이 훌쩍 자란 손주들을 꽤나 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아직 고향 동네에는 산골이어서 잔설이 남아있었다. 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쌀쌀했지만 그래도 시골 공기는 서울 공기와는 달리 상쾌했다.
어머니 연세는 68세이시다.
어머니는 결혼 전에 우리 동네와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중매로 26살 쯤에 재산도 별로 없는 가난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그 시절에는 좀 늦게 결혼을 하신 셈이다. 남편인 우리 아버지가 워낙 부지런하시고 허튼 행동을 잘 안하시고 술을 거의 안드셔서 여느 집들처럼 술 때문에 속썪이는 일은 없었다. 그 점은 어머니에게는 복이라면 복일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당시 그 동네에서 땅을 많이 가지고 계신 유지였는데 상당히 고지식하신 분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큰 외삼촌도 비슷하셨는데 예전(대학다닐 때)에 내가 중국에 갔다 올 일이 있어서 외삼촌에게 중국 술을 한 병 갔다 드렸더니 “왜 외국에서 쓸데없이 돈을 쓰냐”고 말씀하셔서 약간 민망스런 일도 있었다. 형제 많은 집의 막내 딸로 초등학교를 겨우 나오신 어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인정이 많기로 유명하시다. 워낙 낙천적이신데다가 남을 도와주는 일을 거리낌없이 잘 하신다. 이웃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분이시다.
타고난 품성이 그런 분이다. 사시사철을 논일, 밭일 등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 어린 오남매를 키우시는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상상이 된다. 그런데 말썽 잦은 자식들에게 야단치시기 보다는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자주하셨다. 동네 어른들이 집에 놀러오면 “우리아이들은 참 착하다”며 “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를 하고, 심부름도 잘 한다”고 자주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의 과분한 칭찬의 힘은 대단해서 자식들은 모두들 사고 안치고 잘 자라 주었다.
어머니는 내가 학보사 활동과 학생운동을 하느라고 대학을 1년 더 다닌 것에 대해서도 “학교를 오래 다니면 배울 것도 많겠지”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대부분 어머니들이 그러시지만 자식들이 집에 오면 온갖 것들을 잔뜩 싸주신다.
요즘에는 부모님이 싸주시는 것을 귀찮고 무겁다면서 안가져가는 자식들도 있기는 하다. 사실 우리식구들만 먹기에는 많은 양이어서 어머니에게 아는 사람들과 나눠먹겠다고 하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야지"라면서 한 술 더 뜨신다. 자식들에게만 그러시는 게 아니다. 아버지 손님들이 자주 시골 집에 오시는데 어머니는 식사는 물론이고 뭐 줄게 없는지 항상 챙겨주시려고 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다. 우리 집에 손님들이 자주 오고 아버지를 편하게 대하는 것은 모두 어머니 덕이라고. 손님이 오셨는데 누가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이면 두 번 올 것 한 번 밖에 안 올 텐에 어머니는 너무도 잘해주신다는 것이다. 시골 살림이 뻔해 손님들에게 챙겨 주는 것이라야 보잘 것 없고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정이 담긴 선물에 사람들은 고마워하는 것이다.
몇해 전부터 어머니는 동네 교회에 열심히 다니신다.
성경구절을 읽어도 잘 기억이 안나고 찬송가도 잘 안 외워진다는 어머니. 어머니는 아주 성실하게 매일 공책에다 성경구절을 옮겨 적고 계시다. 일요일 아침에 어머니와 함께 교회엘 갔다. 신도가 대여섯 명 밖에 안되는 작은 교회다. 자식들, 손주들 건강하고 잘되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하신다.
어머니가 60대 후반이라는 것이 자식들은 인정하기 어렵다. 착각이지만 어릴 때 어머니 모습 그대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70이 넘으신 아버지도 어머니도 몇해 전부터는 다리도 아프고 농사일도 힘드시다며 육신이 노쇠했음을 자주 드러내신다. 세월 앞에서는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작년부터 자식노릇 제대로 못해오던 우리 오남매가 부모님에게 정기적으로 용돈을 드리려고 마음을 모았다. 부모님이 사셔야 얼마나 사실까, 더 늙으시기 전에 잘해드려야 할텐데 마음은 있으나 역시 자식은 부모의 은혜를 절반도 다 갚기 어렵다.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 모자(1921), 피카소는 어머니의 성이다.
일요일 오후 서울에 도착해 짐을 풀어보니 무 네다섯 개, 김치 두통 등등 몇 가지 먹을거리를 또 싸주셨다.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다녀오고 나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진다. (2010.01.25 이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