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을 포기할 것인가?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국회의원 13석을 당선시켰다. 원내교섭단체 실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진보정당에게 많은 표를 주었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 후보가 과반의석을 차지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가가 다양하지만 야권 쪽에서 국민들에게 정책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선거 과정에서 혁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공감을 얻었다.
유권자들은 참으로 냉정하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권에서 배워야 할 지점은 그것이다. 정권심판론 가지고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에 통합진보당의 문제가 불거졌다.
당원들이 직접 참여해 비례대표 후보 순위를 정하는 통합진보당의 민주적인 공직 선출구조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조준호 당대표가 직접 진상조사 위원장을 맡아 문제점을 조사했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보수언론을 비롯해 진보개혁적인 언론에서도 공격과 비판이 시작되었다.
당내에서도 성찰의 목소리가 높게 울려퍼졌다.
당권파, 비당권파로 나뉘어 의견 충돌이 빚어진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다.
쟁점을 요약하면 두가지이다.
첫째, 진상조사 보고서가 뻥튀기냐, 현실이냐
편의적으로 구분해보면 당권파는 왜곡이 너무 심한 보고서이므로 폐기해야 한다는 것, 비당권파는 미흡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둘째, 비례순위 명부 후보들의 사퇴냐, 아니냐
첫째 쟁점에서 이어지는 논쟁이다. 당권파는 조사보고서가 문제가 있으므로 후보사퇴여부는 당원총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 비당권파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후보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 섞인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진보정당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당원들은 걱정이 쌓여갈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문제가 불거졌으니 현명하게 정리,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가 연달아 열리고 5월12일에는 중앙위가 열렸다.
중앙위는 900명이 넘는 당원대표들이 참석하는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이다.
우려했던 대로 원할한 회의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설마했는데 결국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첫번째 안건이 통과되자 일부 중앙위원들과 참관인들이 당대표단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오후2시부터 밤 10시까지 당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참고 기다리면서 회의장에 있었던 대다수 중앙위원들은 아연 실색하였다.
결국 정상적인 회의가 어렵다고 판단한 대표단은 정회를 선포했다.
진보정당에서 전자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대표단과 다수의 중앙위원들은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5월13일 밤부터 14일 오전까지 중앙위 전자투표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비례대표 경쟁순위는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강기갑 원내대표를 선임하는 것.
당권파 쪽에서는 전자투표 결과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걱정가운데 분당설이 확산되고 있다. 과연 그럴 것인가?
탈당하는 사람들은 이미 생겨났다. 당이 실망스러우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진보정당을 바로세워야 한다면서 새로 당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적극 표시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응원군이라기 보다는 '치유를 위한 발걸음'으로 느껴진다.
힘들게 진보정당 활동을 10년 넘게 해오고 지역위원장까지 맡아 온 입장에서 반성도 많이 되고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당 활동가인 내가 봐도 당의 모습이 실망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진보정당 활동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든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기력감에 빠져 있다가도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꿈틀댄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2008년 분당 사태 때보다도 더 큰 위기 속에 있다.
폭력사태까지 지켜 본 국민들은 이제 진보정당에 기대하는 것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를 생각하지 말고 새로 당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처음처럼' 시작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농토를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땅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