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의 교육공공성은 어떻게 실현, 확장될 것인가?
교육전문지 [우리교육] 겨울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물론 내용이 길어서 줄인 것이 우리교육에 실립니다.
학교급식의 교육공공성은 어떻게 실현, 확장될 것인가?
학교급식네트워크 정책실장 이원영
<글 순서>
1. 무상급식은 과연 진보적인 정책인가?
2. 아래로부터 시작한 친환경 무상급식 확산
3. 친환경급식과 무상급식의 상관 관계
4. 학교급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5. 아직도 진행중인 무상급식 확대 논쟁
6. 급식의 공공적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
7. 친환경무상급식 추진 과정에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
8. 먹거리 기본권으로 확장되는 급식의 미래
1. 무상급식은 과연 진보적인 정책인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은 푸릇푸릇한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이다. 작년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무상급식대상이었다. 수년간 학교급식운동을 해온 보람을 남달리 더 느꼈다. 이렇게 내가, 우리아이들이 그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과연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떤 제도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실질적인 제도개선과 몸으로 느낄 시행까지 이르는데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평가해 보건데 친환경무상급식은 놀랍게도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분석해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주제가 우리가 먹는 ‘밥’이기 때문이다. 먹는 문제는 누구나 쉽게 공감하기가 쉽다.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자’라는 주장에 대해 “학교급식, 뭐 그까짓 거 대충 먹이면 되지”라고 되받아치기가 만만치 않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많은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수년 전만해도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경기도 과천시에서는 2001년부터 시의 기금을 사용하여 시범적으로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었다. 전 한나라당 대표였던 안상수 전국회의원의 지역구였다. 광역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시행을 시작한 곳은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어 무상급식 이슈가 화산처럼 촉발되었던 경기도 교육청이 아니었다. 바로 경상남도 교육청이었다. 2007년 권정호 경남교육감 후보가 핵심공약으로 내걸고 교육감에 당선되면서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전국 교육청 가운데 제일 처음으로 추진하였다. 광역 시도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하게 하는데 경남교육청은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무상급식의 선구자는 바로 전 권정호 경남교육감이었고 바로 누가 봐도 보수적인 지역이었다.
무상급식에 전국적인 논쟁이 된 것은 이른 바 진보교육감 첫 주자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 현 교육감이 당선되고 나서다. 2009년 4월 주민직선에 의해 경기도 교육감에 선출된 김상곤 교육감이 내건 핵심 공약은 무상급식과 혁신학교였다. 김상곤 교육감이 무상급식 일부 확대 예산을 교육위원회와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는데 보수적인 교육위원과 도의원들이 그 예산을 반 토막 내고 막말이 쏟아지면서 전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무상급식이 정치적인 의제로 부각되어 전국적인 시행의 계기가 된 것은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였다. 민주당 자치단체장 후보, 지방의원 후보 대부분과 교육감 후보 대다수가 무상급식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야말로 무상급식이 후보였던 선거였다. 선거 결과 당시 한나라당이 참패하고 무상급식을 내걸은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초등학교 무상급식은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었다.
2012년 현재 무상급식 추진 현황은 어떨까?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의 차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유기홍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2012년 시·도교육청별 무상급식 추진 현황'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생 669만7296명 가운데 48.2%(322만7819명)가 무상급식을 지원을 받고 있다. 학교 수로 보면 전국 1만1445개 초중고등학교 중에는 7830개교(68.4%)가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급별로 살펴보면 초등학교가 91.5%, 중학교 67.1%, 고등학교10.6%이다.
시도별로 비교해보면 전북 지역이 90.7%로 가장 높았고 전남(87.7%), 세종시(85.7%), 제주(83.6%), 충북(82.6%), 경기(78.7%), 경남(77.9%), 광주(77.8%), 서울(71.9%), 충남(70.8%) 등 10개 지역은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학교 비율이 70%를 넘었지만 대구(6.5%), 울산(29.3%), 경북(47.9%)은 저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2년 4월, 전국 초·중·고 무상급식 시행 학교 현황 *출처- 교육과학기술부 자료 | ||||||||||||
시도 |
전체학교수 |
무상급식 학교수 |
무상급식 비율 | |||||||||
초 |
중 |
고 |
계 |
초 |
중 |
고 |
계 |
초 |
중 |
고 |
계 | |
서울 |
594 |
379 |
317 |
1,290 |
552 |
376 |
0 |
928 |
92.9% |
99.2% |
0.0% |
71.9% |
부산 |
299 |
169 |
143 |
611 |
292 |
0 |
0 |
292 |
97.7% |
0.0% |
0.0% |
47.8% |
대구 |
216 |
123 |
92 |
431 |
21 |
6 |
1 |
28 |
9.7% |
4.9% |
1.1% |
6.5% |
인천 |
238 |
133 |
119 |
490 |
238 |
0 |
0 |
238 |
100.0% |
0.0% |
0.0% |
48.6% |
광주 |
148 |
87 |
67 |
302 |
148 |
87 |
0 |
235 |
100.0% |
100.0% |
0.0% |
77.8% |
대전 |
143 |
88 |
61 |
292 |
143 |
0 |
0 |
143 |
100.0% |
0.0% |
0.0% |
49.0% |
울산 |
119 |
61 |
52 |
232 |
62 |
6 |
0 |
68 |
52.1% |
9.8% |
0.0% |
29.3% |
경기 |
1,203 |
594 |
433 |
2,230 |
1,203 |
552 |
0 |
1,755 |
100.0% |
92.9% |
0.0% |
78.7% |
강원 |
352 |
163 |
117 |
632 |
323 |
75 |
26 |
424 |
91.8% |
46.0% |
22.2% |
67.1% |
충북 |
258 |
129 |
83 |
470 |
258 |
129 |
1 |
388 |
100.0% |
100.0% |
1.2% |
82.6% |
충남 |
423 |
187 |
117 |
727 |
423 |
92 |
0 |
515 |
100.0% |
49.2% |
0.0% |
70.8% |
전북 |
413 |
208 |
132 |
753 |
413 |
208 |
62 |
683 |
100.0% |
100.0% |
47.0% |
90.7% |
전남 |
427 |
246 |
157 |
830 |
427 |
246 |
55 |
728 |
100.0% |
100.0% |
35.0% |
87.7% |
경북 |
484 |
279 |
192 |
955 |
310 |
147 |
0 |
457 |
64.0% |
52.7% |
0.0% |
47.9% |
경남 |
512 |
273 |
197 |
982 |
512 |
153 |
100 |
765 |
100.0% |
56.0% |
50.8% |
77.9% |
제주 |
110 |
43 |
30 |
183 |
110 |
43 |
0 |
153 |
100.0% |
100.0% |
0.0% |
83.6% |
세종 |
21 |
9 |
5 |
35 |
21 |
9 |
0 |
30 |
100.0% |
100.0% |
0.0% |
85.7% |
합계 |
5,960 |
3,171 |
2,314 |
11,445 |
5,456 |
2,129 |
245 |
7,830 |
91.5% |
67.1% |
10.6% |
68.4% |
전국적으로 이렇게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지만 중앙정부의 무상급식 예산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올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무상급식 지원 예산은 시·도교육청 8091억8000만원, 지자체 지원 7533억5000만원 등 모두 1조5600억원에 이르는데도 국가는 손을 놓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교육만이 살 길’이라고 내걸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의 애초 시작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선거와 결합되면서 다소 진보적인 의제로 부각되었고 순식간에 보편적 복지 논쟁으로 확대 되었으며 현재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의제로 자리를 확고하게 굳힌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중앙정부 차원의 무상급식 지원에 대해 진보,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한목소리로 ‘의무교육 대상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의 국가적 지원’을 촉구하였다.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을 시도교육청에서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고 교육청마다 천차만별인 무상급식 실시는 교육행정분야에서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 아래로부터 시작한 친환경 무상급식 시행 확산
우리나라 학교급식의 변화와 발전은 숨 가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무상급식이 지난 3년 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한 것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학교급식의 역사가 아주 짧다. 초중고 전체 학교에 급식이 실시된 것이 고작 10년 조금 넘었다. 우리나라의 학교급식은 해외 원조 분유를 결식아동들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출발하였고 1981년에 학교급식법이 제정되었다. 일부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학교급식이 시작되다가 1993년 초등학교, 1998년 고등학교, 2000년 중학교로 급식이 확대되었다. 그래서 30대 후반, 40대 이상 세대 어른들은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의 추억을 대부분 간직하고 있다. 과거 학생을 둔 부모님들이 도시락 싸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 어머니도 두 살 터울의 남매를 다섯 명이나 키우셨는데 없는 살림에 매일 매일 도시락을 어떻게 준비하셨을까 그 고마움에 가슴이 찡해진다.
비록 그 역사는 짧지만 학교급식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실시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학교급식의 급속한 전면 확대, 민간업체의 위탁급식 허용으로 잦은 식중독 사고 발생 등 집단 급식의 문제점이 속속 표출되기 시작했다. 문제가 자주 발생하면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높아지는 법이다. 2003년 전후로 학부모들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학교급식 문제 개선을 위한 활동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른바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시군구마다 급식지원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주민발의, 주민청원운동을 진행하였고 16개 광역 시도에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운동본부가 결성되어 활발한 법, 제도 개선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때 학교급식운동 단체들이 학교급식 개선 과제로 제시한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둘째, 위탁급식의 직영전환, 셋째, 점진적인 무상급식 확대이다.
전국 광역 시도와 기초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학교급식지원조례가 제정되었고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자치단체의 학교급식지원이 확대되었으니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상 이런 일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2006년에 재벌기업에서 운영하는 위탁급식업체가 급식을 하고 있는 학교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집단식중독 사고를 겪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파만파로 식중독 문제가 확산되자 부랴부랴 국회의원들은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때 전면적인 학교급식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위탁급식을 직영으로 전환하는 내용과 학교급식 식재료 사용 기준의 강화, 급식지원센터의 설치 등이 담겨 학교급식법이 개정되면서 겨우 식중독 사고 파장은 한숨을 돌렸다.
학교급식 제도의 개선은 지금도 그렇지만 아래로부터 변화가 만들어진 매우 특별한 정책 이슈이다. 지역의 교육, 농업, 환경, 여성, 자치 관련 시민단체들이 발 벗고 나서서 함께 연대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변화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하다.
친환경무상급식 시행이 자치단체에서는 활발하게 확산되어 왔는데 아직도 중앙정부는 손 놓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이렇듯 만들어지면 중앙정부에서 법도 개정하고 예산도 책정하면서 여러 가지 제도적 뒷받침을 할 법도 한데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남의 나라 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이만저만 답답한 노릇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와 새누리당은 주민들의 참여와 요구로 빛난 친환경무상급식에 대해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몇 차례 중요한 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가 그들에게 크나큰 악재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시행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무리하게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오시장의 뜻대로 투표 결과가 안 나오자 보궐선거까지 치러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입은 상처가 적잖이 컸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세를 계속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을 해보게 된다.
3. 친환경급식과 무상급식의 상관 관계
작년에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학부모 입장에서 급식 모니터링을 하러 간 적이 두 번 있었다. 아침에 들어온 식재료를 영양사 선생님이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농산물이 보기에도 좋았고 대부분 친환경인증마크가 붙어 있었다. 식재료 창고에는 친환경 쌀, 그것도 나의 고향에서 난 ‘물맑은 양평쌀’이 쌓여 있었다. 직접 식재료를 확인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현재의 급식단가로 친환경급식을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잘 모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해가 된다. 정 못 믿겠으면 학교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2006년 이전에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안과 학교급식법 개정안에 ‘안전한 우리농산물 사용’ 문구를 넣는 것을 추진할 때 정치인들이나 농식품부, 외교통상부 관료들은 국제법을 들이대며 WTO 협정 위반이어서 안된다고 주장을 했었다. 그 때는 아무리 명분과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어도 그들의 논리가 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었다.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은 공공급식을 예외로 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만 안되냐”고 매운 목소리로 항변하였지만 쇠귀에 경읽기였다. 그 때 외교부 관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무상급식 지원으로 정부에서 현물 조달형식으로 하면 문제가 없지만 학부모가 급식비를 부담하는 우리나라 급식 상황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만 주장하고 포기하라는 뜻으로 들렸었다. 광역 의회를 통과한 경상남도, 전라북도, 서울시의 급식지원조례를 ‘우리 농산물 사용’ 문구가 들어있다고 당시 행정자치부와 교육부가 국제법 위반으로 대법원에 제소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황당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찌되었든 급식운동단체와 농민단체의 줄기찬 요구로 작년 2011년 말 WTO 협정에서 공공급식에 자국 농산물 사용은 예외로 인정받는 성과가 만들어졌다. 정부(지방정부 포함)가 공공조달 형태로 우리 농산물을 학교에 공급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가능해 진 것이다.
친환경 급식과 무상급식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걷은 세금, 즉 정부 예산으로 급식비를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친환경 우리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 당연히 결합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예산 지원과 급식 공급체계에 대한 개선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친환경무상급식은 하나의 정책으로 펼쳐져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 친환경무상급식 예산으로 농업과 급식을 연계 할 수 있을지 해답은 이미 제시되고 있다. 지역차원에서 로컬푸드와 급식이 연계되고 있는 사례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에게 건강을, 농민에게 희망을”이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으로 더 잘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전문가들과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함께 고민하고 있다. 친환경무상급식이 되면서 ‘급식 맛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가끔 들린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면 관련 없는 어떤 현상이 그 정책과 연결되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식재료 물가가 오른다거나 영양교사가 바뀐다거나 한편으로는 저염, 저당, 저트랜스지방으로 변화한 건강식단에 학생들이 불만을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부분적인 비판은 감수하더라도 확실한 것은 친환경무상급식으로 학교급식의 질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4. 학교급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수업료는 안내도 학교급식비는 당연히 학부모가 내야 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시장에서 장을 보듯이 학교급식 식재료는 당연히 시장 유통구조를 통해 공급해야 하는 줄 알았다. 급식은 밥을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잘 먹이면 되지 무슨 교육이 필요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의무교육인데 교육의 일환인 급식비를 학부모가 내야 하는가? 또한, 안전한 식재료를 학교급식에 공급해야 하는데 식재료의 질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없는 시장을 통한 공급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처음에 문제제기를 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는 항상 반론이 있기 마련이다. 변화가 쉽사리 될 리가 있겠는가? 특히, 현재 질서에 나름 적응해 살고 있는 상황에서는 변화가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바라보거나 부딛혀 보게 되면 그 때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그 현실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어항 가운데 유리벽을 설치해 놓으면 그 상황에 익숙해져 유리벽을 치워도 건너편으로 가지 않는 물고기 실험을 떠올려 보자. 물론 문제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계기로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잦은 식중독사고, 급식비리, 아이들의 건강악화, 급식비 미납학생의 증가 같은 놀랍고 구체적인 사건, 혹은 연구 결과, 숫자로 알 수 있는 통계, 언론의 보도로 학교급식의 여러 문제들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이른바 개별적인 학교급식 문제가 ‘해결을 꼭 해야만 하는’ 전 사회적인 문제로 변화되었다.
학교급식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노력의 결과 학교급식은 시작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아직은 절반의 성공 정도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은 획기적이다.
첫째, 이제 학교급식은 학부모의 주머니가 아니라 국민들이 낸 세금, 즉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른바 무상급식이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나게 확대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의 무상급식은 거의 대부분 시도에서 안착 단계에 있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 실시되는 지역도 내년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정부에서 시작한 일도 아니고 교육청,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확산되었다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
둘째, 시장 구조에 의존하던 학교급식 식재료가 공적인 유통구조를 통해 학교에 공급되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이 학교급식에 사용되면서 공공적인 성격을 띤 학교급식유통센터가 급식식재료 공급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존에 영리를 추구하면서 식재료를 공급하던 급식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수준이다.
셋째, 학교에서 영양교사, 식생활 교육전문가들이 학생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시작했다. 학교급식의 변화와 함께 식생활교육의 필요성이 확산되었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져 2009년에 큰 논란 없이 식생활교육지원법이 국회에서 제정되었다. 이제 식생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높여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식생활, 식문화교육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책을 강구하고 노력하여야 할 정책으로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넷째, 안전한 우리농산물, 지역농산물이 학교식탁에 오르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던 국제법의 한계가 깨끗하게 사라졌다. WTO 협정 위반이라며 엄살을 떨면서 국제적인 신뢰를 운운하던 농식품부, 외교부 관료들의 눈 꼴 사나운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마음만 먹으면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농가소득에도 도움이 되고 학생들 건강에도 일조하는 시스템을 시행하는 것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학교급식법과 학교급식조례에 우리농산물, 지역산 농산물의 학교급식 공급 방법과 절차를 명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의 예산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친환경 우리농산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공공기관이 책임지는 공공조달의 형식으로 제공하고 다양한 식생활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 주머니에 의존하여 출처를 알 없는 불안한 식재료를 시장유통구조에 따라 제공하던 학교급식 운영 시스템은 이제 흘러간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항상 공존하는 법이다. 학교급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해서 과거의 모습이 쉽게 사라질 수는 없다. 현재 학교급식의 변화는 꽁꽁 닫혀있던 문의 열쇠가 풀어지고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이 반쯤 열린 정도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5. 아직도 진행중인 무상급식 확대 논쟁
올해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며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정책경쟁의 핵심 화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이다. 과연 국민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누가 이기더라도 작은 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거기에 쏠려있는 가운데 이번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교육감 보궐 선거가 함께 진행된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후보 단일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교육감이 어떤 자리인가? ‘교육소통령’이라고 불리는 이 자리에 누가 당선되는가에 따라 서울교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특히, 친환경무상급식이 차질없이 확대 시행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을 틀 것인지도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몰라도 최근 11월 들어 학교 급식 관련 기사가 언론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 무상급식 확대에 소요되는 예산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간에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무상급식의 시행으로 화장실도 고칠 예산이 부족하다는 식의 악의적인 보도가 시작되었다. 기사의 제목도 매우 선정적이다. ‘무상급식의 덫, 무상급식의 역습’ 등 무상급식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본색을 드러내는 여러 기사들을 보면 아직도 무상급식 논쟁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강원도 춘천시장은 ‘강원도의 오세훈’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무상급식 예산편성을 거부하고 있다. 또, 부산시 교육감이 다른 시도 학생과의 교육차별을 해소하겠다며 초등학교 무상급식 확대 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하자 새누리당 부산시의원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정된 재원에 예산은 뻔한데 무상급식 확대가 다른 항목의 예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반대하는 모습들이 지방자치단체 예산심의 철을 맞아 눈에 제법 띄는 것은 올해 뿐 만 아니라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전과는 약간 다른 점이 보인다. 주로 예산의 문제가 핵심이다. 전에는 ‘부자들에게 무슨 공짜밥이냐’를 무상급식 반대의 중요한 근거로 제시했었다. 왜 그런 주장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
대선을 앞둔 복지논쟁을 살펴 보면 반값 대학등록금, 고등학교 무상교육, 무상보육 확대, 무상의료 실시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공연히 그런 주장을 하면 제 발목을 잡는 셈이 되어서 그럴 것이다.
친환경무상급식은 시작단계에서는 논쟁이 꽤 치열했지만 시행 중에 학부모 여론을 살펴보면 정책 만족도가 높은 특성이 있어서 정치인들이 함부로 반대했다가 혹시 역풍을 맞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내에서도 무상급식 반대 목소리를 우려하는 정치인들이 꽤 있다.
중앙정부의 무상급식 예산부담을 명문화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최근 11월에 국회에 제출되었고 12월 정부 예산심의를 앞두고 있다. 중앙정부의 무상급식 예산 부담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계속 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 어떤 논리로 반대를 할 것인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일이다.
새누리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등 무상급식을 둘러싼 상황은 만만치 않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싶다. 내년 안에 정부가 무상급식을 함께 책임지는 예산을 편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학교급식법의 전면적인 개정도 마찬가지로 이뤄지지 않을까? 2014년 6월 지방선거가 있는데 그 때까지 무상급식 논쟁이 계속되면 누가 좋고 누가 나쁠 지 곰곰이 고려해 판단한다면 말이다.
보수적인 성향의 교육감도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전국의 교육감들이 한목소리로 중앙정부 예산부담을 촉구하고 있다. 예산 프레임이 아니라 교육과 복지 관점에서 현실을 보면서 숙제를 풀었으면 좋겠다.
6. 급식의 공공적 가치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친환경무상급식이 어떻게 확대되고 있고 학교급식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풀어보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논쟁은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불안감도 있지만 낙관적인 전망도 해봤다. 한 숨 돌리면서 이 시점에서 조금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학교급식의 공공적 가치, 왜 학교급식이 중요한가에 대해서이다.
지난 몇 년간의 학교급식에서 이루어진 변화는 우리사회의 변화에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식민지, 동족 간 비참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특유의 근면성으로 50년 만에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다다를 정도로 빛나는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남북 분단 상황과 혹독한 군사독재의 악조건 속에서도 민주화 투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 달성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심각한 대학등록금, 사교육비 등 공교육의 부실, 빈부격차와 비정규직 확대 등 사회양극화 심화, 복지보다는 토건 중심의 행정, 가치가 무시되는 물질만능의 사회 풍조를 비롯해 다양하고 풀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곪아터지기 직전인 상태로 증폭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가치가 국가, 사회, 개인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대정신이 다시 떠오르고 사람들 사이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로 변화하고 서로 물어 뜯는 무한 경쟁에서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협동중심으로 경제패러다임도 함께 발을 맞추어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디에서나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앞 말이 장황했다. 학교급식에서는 이러한 공생의 가치, 인간중심의 실현되고 있음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학교급식 변화의 목표는 ‘행복한 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부자아이나 가난한 아이나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건강하고 질높은 밥을 먹이자는 것이고 생명농사를 짓고 밥을 준비하는 농부와 조리종사원들이 모두 행복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옛말에 ‘밥이 하늘’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아닌가? 학교급식은 행복한 밥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가 버무려졌다. 교육, 건강, 복지, 농업, 환경, 여성, 노동, 문화 등 밥에 포함되어 있는 맛과 영양소가 다양하다.
밥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 즉 급식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년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토론해온 방안을 제시해보겠다. 친환경무상급식의 정책적 목표를 다시 구체적으로 잡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학교급식은 학생들의 건강한 심신 발달에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성장기 학생들은 성인에 비해 음식이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따라서 전문가들을 어릴 때부터 무엇을 먹느냐가 평생의 건강을 좌우한다고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보다 친환경농산물 사용을 확대하고 다양한 식재료들 가운데서 위해성 논란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전예방의 원칙’을 확실히 적용하여야 한다.
둘째, 식생활, 식문화 교육을 전면화하여 음식을 생활 속에서 중요한 선택의 부분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친환경무상급식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단지 제공받는 차원을 넘어서 건강, 문화, 사회 관계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현재, 미래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인식하며 자연스럽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여야만 ‘밥상머리 교육’의 의미가 제대로 구현될 것이다.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먹거리가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의식은 그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교사, 학부모와 함께 학생들에게도 스스로 먹거리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학교에서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다.
셋째, 먹거리의 착한 소비와 착한 생산의 연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이른바 ‘얼굴이 보이는 급식’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하고 질높은 급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이윤추구의 정글법칙이 작용하는 시장에서는 이러한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다.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얼굴이 보이는 신뢰관계를 만들어 상호 이익이 되는 공생관계를 만들면 지속가능한 착한 소비와 착한 생산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정책 수립, 시행 등 급식운영의 모든 과정에 민주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의 공공성은 시민과 행정이 상호 공감하는 구조가 만들어 질 때 가능하다. 과거 행정의 관성대로 학부모, 학생을 정책의 수혜자로 바라보면 학부모는 급식 검수 등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학생은 만족도 설문조사에 응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불만과 문제점을 제기하는 객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또한, 학교급식 조례 제정 활동을 진행하고 더 나아가 학교급식 체계 개선을 연구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해온 시민사회 진영의 전문가 그룹의 참여도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학부모와 시민단체 진영의 실질적인 참여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7. 친환경무상급식 추진 과정에 함께 풀어야 할 과제들
너무 뜬 구름 같은 목표인가? 앞에 열거한 정책 목표, 즉 학생들의 건강한 심신 발달에 대한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기여와 식생활, 식문화 교육의 전면적인 실시, 생산자와 소비자 상호간의 유기적인 협조체계 구축, 민주적인 정책 소통 구조 마련은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제시할 추진 과제는 말이야 쉽지만 실제로는 만만치 않은 일들이다.
따라서 전문적으로 이를 수행할 공공기관이 필요하다. 현행 학교급식법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임의조항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학교급식지원센터가 명문화되어 있다. 정책, 기획, 홍보, 교육 등을 담당할 급식지원센터를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여 친환경무상급식 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친환경무상급식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첫째, 가공식품까지 포함하여 학교급식 식재료의 품질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 앞으로 급식지원센터를 통해 공급되는 급식 식재료는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상호 신뢰 속에서 질 높고 안전한 친환경 생산물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학교급식도 최근 우려가 높은 방사능 오염, 화학첨가물, 각종 중금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의 경우는 그나 안심할 수 있지만 철저한 안전 검사 시스템을 거듭 구축하여야 한다. 아직도 가공식품의 경우는 학교급식 식재료 기준이 미약하다. 일반 시장 판매를 목적으로 대량 생산된 공장형 식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식재료의 본성보다는 착향, 착색, 보존을 위한 화학첨가물이 범벅이 되어 있으며 이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값싼 외국산 원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앞에서도 강조한 ‘사전예방의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여 화학첨가물 배제 등 높은 수준의 식재료 품질 기준을 마련하여야 한다. 울산시 북구 급식지원센터처럼 품목마다 제조과정과 원재료를 확인할 수 있는 ‘품목제조보고서’와 유해물질을 배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시험성적서’, 원재료의 출처를 정리한 자료들을 기본으로 확보하고 제조 공장에 대한 엄격한 실사를 진행하는 등 가공식품 선정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 친환경 생산자와의 신뢰에 기반을 둔 생산 공급 계약 시스템을 추진하여야 한다. 물론, 학교단위에서 이를 실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한 학교급식지원센터에서 이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다.
전국 농산물 가운데 친환경 농산물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친환경 농산물 품목마다, 계절마다 주산지가 다르고 이에 대한 정확한 생산기반 조사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1만여 개 학교의 700만 명 가까운 초중고 학생들의 학교급식에 필요한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교육청이 협조하여 급식지원센터를 설치하여 정확한 목표설정을 통해 해당 지역과 전국에 존재하는 생산자 조직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전남 나주시의 경우 친환경유통센터를 통해 지역 생산자와의 직접 계약재배를 하여 지역과 타 지역의 학교급식에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농식품부와 자치단체에서는 생산기반이 마련되어 있는 광역자치단체와의 업무 협조를 통해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해 함께 공유하고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면밀한 실태조사와 전문가 검토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기반이 있는 해당 자치단체에서는 지역생산자 조직과 함께 지속적인 소득보장과 판로 개척, 신뢰관계 유지를 위해 잔류농약 확인 등 철저한 생산 관리로 안정적 공급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필요한 협력체계를 형성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급식지원센터에서는 급식 소비자인 학교, 학부모가 생산현장 방문, 조사, 심사 등을 할 수 있도록 ‘생산 현장 실사단’ 또는 ‘생산 현장 평가단’을 결성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을 제공하여 신뢰 관계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자치단체, 교육청과의 정책 수행 목표를 공유하고 공동의 협조체계를 형성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육 행정과 일반 행정이 구분되어 있어 자치단체의 급식 행정 수행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노정되어 있다. 이미 서울지역의 700개가 넘는 학교에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는 서울시 친환경유통센터도 학교와 직접 계약이 어려운 법적 한계 등 문제점이 여전하다. 법 개정도 필요하고 교육청(학교)과 자치단체가 행정협력 체계를 형성하여 직무연수, 식생활교육, 안전점검, 공급평가 등 다양한 친환경무상급식 사업들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 등에서 영양교사 교육 등을 진행하여 보면 오랜 기간의 급식 운영 관성이 아직도 남아 있어 친환경무상급식 정책의 의미를 교육 주체들이 체화하기 있지 못하며 생산 현장과의 접촉 경험도 미약한 상황이다. 학교 현장의 변화가 학생들의 건강 증진과 친환경 농산물의 생산 기반 조성 등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청 관련 부서 담당자, 영양교사, 시민단체 등이 함께 연구, 조사 사업을 기획하고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도록 추진하는 것도 사업과제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넷째, 학부모, 시민들과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개방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민관거버넌스를 통해 시민들이 사업의 주체가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 학부모, 영양교사, 시민단체 등 다양한 학교급식 정책의 주체들이 실질적으로 의사 결정, 공급 구조 개선, 업체 선정, 식생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직접적인 사업 예산 지원 등도 실시하여야 한다. 그동안 친환경무상급식 정책 추진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는 아이디어 제안, 정책 자문, 평가 수준에서 머물렀다. 생산자 단체, 학부모 단체, 급식관련 시민단체 등이 급식지원센터 운영위, 현장 실사단, 가격결정심의위원회, 업체심사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단순히 자문이 아니라 심의권을 갖도록 권한을 주어야 수년간 축적된 역량들이 급식통합센터에서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친환경무상급식의 공공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고 사업목표와 사업계획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폭넓고 다양한 교육, 토론, 워크샾 등이 사업의 밑바탕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은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안되어서는 해결이 요원하다. 학교급식지원센터는 총괄센터와 조달센터로 나뉘어 역할을 명확하게 하여 자치단체에서 설치해야 하며 자치단체에서 설치한 센터를 통해 학교급식 식재료가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목표와 취지를 국회의원들이 인식하여야 하며 뜻을 모아 법 개정을 시급히 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2012년 1월에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지원조례를 개정하여 올해 10월에 광역시도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광역급식통합지원센터를 설치해 2013년부터 본격적인 친환경무상급식 관련 교육을 시행하고 식재료 공급시스템 혁신에 착수할 예정이다.
학교급식 업무를 담당해온 교육청과 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너무나 일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 시행하는 과정이 어디 쉽겠는가? 친환경급식으로 변화하면서 학교 영양교사들과 조리종사원들의 겪는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학교급식 관계자들의 땀과 노력이 없다면 친환경무상급식은 요란한 구호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격려하면서 조금 더 힘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친환경무상급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행복한 밥’을 짓는 학교조리실의 종사원들이 고용불안, 낮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00만원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해마다 줄어드는 학생 수로 해고의 위험에 있다는 것을 모두가 확인하고 있다. 조리종사원을 비롯한 학교비정규직들은 교육감 직접 고용, 호봉제 도입 등 아주 소박하지만 절실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까지도 결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열악한 현실과 너무도 당연한 삶의 요구를 외면하고 어찌 학교급식이 제대로 되길 바라겠는가? 조리종사원들이 행복한 밥을 지을 수 있도록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데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학교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8. 먹거리 기본권으로 확장되는 급식의 미래
학생들의 교육기본권 보장과 심신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 변화해 온 학교급식은 학교 밖의 변화에도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건강권 교육권이 국민들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 요구로 이어지고 있는데 모두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아직은 생소할 수 밖에 없는 ‘먹거리 기본권’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학교급식의 변화를 아동, 노인, 장애인, 대학, 병원 등 다양한 공공급식 분야 확대하여 국민들의 먹거리 건강권, 먹거리 복지권, 식량주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먹거리의 공공적인 가치를 학교에서 사회로 확장하자는 의미인데 대선을 앞두고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중요한 정책 과제로 잡아 대통령 후보들에게 정책 요구를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앞으로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위한 연구와 제도 개선 방안을 찾아 나갈 계획이다.
저소득층 및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들은 최소한의 먹을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하고 빈부간의 건강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해마다 식량자급율이 줄어들고 농민들의 삶은 피폐해져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먹거리 위기 시대에 희망의 먹거리 정책을 펼쳐야 한다.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공급식의 확대를 통해 과연 국민들의 먹거리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기초 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를 통해 식량 자급율을 높이고 수매한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공공급식에 공급하는 체계를 만드는 핵심이다. 비록 우리 농업의 회생과 국민의 먹거리 위기를 해결 할 수 있는 꿈만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이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