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갈기

<13>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 동자동의 소박한 희망

보리아빠 이원영 2014. 1. 27. 12:49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자동마을의 소박한 희망

 

용산에는 내노라 하는 재벌가들이 살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집이 한남동에 있다. 그 집 전기세는 수천만 원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일까? 한강변에 위치한 동부이촌동은 강남에 뒤떨어지지 않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동네이다. 부자동네는 예외 없이 땅 값이 비싸다. 지금은 용산의 모든 곳 부동산 값이 치솟은 상태이다. 최근 부동산 경기는 주춤한데 전세 값은 해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다.

남의 집에 살면서 재계약이 두려운 동네가 내가 사는 세계의 중심, 이제는 용산시대의 용산이다. 보통 전월세 계약은 2년을 한다. 요즘에는 2년 만에 1억을 올리는 곳도 많다. 치솟는 전세 값에 미련 없이 정든 용산을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용산은 부동산 개발이 가장 큰 이슈인 곳이다. 한남뉴타운을 비롯해 곳곳에 개발 바람이 여전하다. 개발이 되어야 땅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재개발의 폐해가 확산되면서 원주민들이 정착하는 개발, 원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재벌이 살고 부동산 부자들이 많은 용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바로 용산에 있다. 이른바 쪽방촌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다.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용산구 동자동과 그 주변에는 쪽방이 밀집되어 있다. 1천 가구 가량이 한두 평 남짓한 쪽방에서 살고 있다. 돈 없고 병들고 세월 속에 나이가 들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자동 쪽방 마을에는 중요한 선거철이 다가오면 거물급 정치인들이 다녀간다. 쪽방 주민의 손을 잡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높은 곳을 지향하는 후보들은 사진 촬영을 한다. 가난한 이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 같았던 그 사람들, 선거 이후에는 감감무소식이다. 가난한 이들이 밀집되 있다보니 온갖 자선단체, 종교단체, 내노라하는 기업에서 계절마다 구호 물품이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안타까운 것은 물품을 나눠준다는 공지가 뜨면 모이는 사람 수와 비슷한 300, 400개가 안되면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 없어서, 나눠 주고도 욕먹을 수 있어서 중간에 있는 기관들은 난감한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이 동네에 동자동 사랑방이라는 아주 특별한 단체가 있다. 5년 전부터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일구고 무언가를 해결하고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쪽방마을 빈민인권운동단체라고 할 수 있다. 3년 전에 이곳에서 커다란 일을 벌였다. ‘사랑방공제조합을 만든 것이다.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이 피 같은 돈을 모아 기금을 조성하고 필요한 일이 생길 때 담보도 없이 빌려주는 빈민은행 같은 것이다. 3년 만에 380명이 넘는 조합원, 8천만원 가까운 조합기금 조성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난한 이들의 협동조합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병원비, 이사비 등 살면서 급한 일이 있을 때 조합원들은 사랑방 공제조합에 급전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시중 은행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가난한 이들이 주인인 사랑방공제조합에서는 조합원이면 누구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출심사위원은 그들의 딱한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동네 주민이기 때문이다. 비록 20만원, 30만원 적은 돈이지만 없이 사는 그들에게는 너무도 유용하게 쓰인다. 이 공제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태헌 형님은 3년 동안 1억원 넘게 대출이 있었고 대부분 문제없이 약속한 대로 상환되고 있다고 자부심을 내비친다.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 공제조합은 용산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들, 따뜻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방송, 언론들, 우리나라 빈민운동 사례를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의 학자들, 단체 활동가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201411일 새해벽두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동자동사랑방에 공무원을 대동하지 않고 갑자기 방문했다. 동자동사랑방의 후원 회원이자 가까운 손님정도였다가 작년부터 동자동사랑방 운영위원인 나도 그 대화의 자리에 함께 있었다. 박원순 시장은 자신도 동자동사랑방 후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단순한 수혜의 대상을 넘어 스스로 자립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면서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공제조합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서울시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동자동 활동가들은 서울시의 시혜적 차원의 지원보다 자립과 공생을 위한 노력에 우군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다.

 

동자동 사람들의 사연을 몇 분 들어보았는데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지상정일 것이다. 쪽방을 방문해본 사람은 안다. 아직도 이런 주거환경 속에 사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부터 나온다. 공동화장실엔 따뜻한 물도 안나오고 1개의 열악한 공동화장실을 10가구가 같이 쓴다.

알콜 중독, 우울증, 온갖 질병에 가난까지 겹쳐서 희망이 없는 듯 보이지만 동자동에도 사람사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고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으며 나름의 희망을 가꾸고 있다.

 

작년 가을 동자동주민들 30여명이 12일 워크숍을 했다.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토론했다. 각종 질병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현미채식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토론 끝에 세 가지 중요한 마을 환경개선 사항을 도출했다. 첫째가 동자동에 보건분소가 필요하다는 것, 동네에 작은 의원도 없는 현실, 환자가 많은 동네 현실 때문이다. 둘째, 인근 공원 화장실 개선 문제 해결. 쪽방 촌 특성상 공원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는데 화장실이 부족하고 노인 등 관절이 안 좋은 주민을 위해 좌변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동네목욕탕 있어야 한다는 것. 지난해 가을 그나마 하나 있던 동네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겨울에는 특히 씻기 어려운 동네주민들에게 목욕탕은 건강과 행복에 직결된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

 

지난해 11월 동자동사랑방 운영위 회의에서 동네 목욕탕 문제가 논의되어서 그렇다면 즉각 목욕탕 추진위를 결성해 주민들의 힘을 집결하고 관청의 협조를 얻어 목욕탕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요즘 같은 따뜻한 물 펑펑 쓰는 시대에 목욕탕이 절실한 동자동의 딱한 사정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친한 몇몇 이들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혹시 동자동 목욕탕 추진위원으로 함께하면서 작은 후원을 해줄 수 있는지 물으니 당연히 함께 힘을 모아보겠다고 모두가 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빨리 추진하고 싶은데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공제조합의 대표와 사무국장은 생각이 달랐다. 아무리 절실해도 누군가의 시혜적 금전지원으로 이 일이 해결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힘으로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공제조합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듯이 주민들이 참여해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는 그 원칙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숙성을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동자동 행사나 회의를 갈 때마다 동자동 활동가들이 너무나 존경스럽다. 나도 남부럽지 않는 잔뼈 굵은 활동가이지만 그만큼 동네 사업이 힘들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기 때문이다.

 

5년 동안 동자동에서 살면서 사무국장, 대표를 했었던 동자동사랑방의 억척스런 일꾼 엄병천 형이 고향인 제천으로 12년 가을에 대표를 사임하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향했다. 그리고 작년 겨울 마흔 다섯 살 나이에 필리핀 여성과 오래 기다린 듯 한 결혼식을 올렸다. 동자동 주민들은 병천 형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버스 한대를 대절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추적추적 보슬비 내리는 날씨에 시골 마을 회관에서 병천 형은 전통혼례를 치렀다. 동자동 주민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결혼식을 지켜보았고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기념촬영을 했다. 동자동을 떠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존경스럽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연고 없는 죽음과 상주 없는 장례식도 자주 있지만 가난한 이들의 마을에 오히려 더 따뜻한 정이 흐르고 있다. 나는 2014년에는 주민들의 힘으로 목욕탕이 꼭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나도 있는 힘을 다해 그들과 힘을 모으고 싶다. 동자동 목욕탕에서 나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보고 싶다. (2014120일 보리아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