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
좋은 글이라 나누고 싶어 퍼왔습니다.
*이 글은 가톨릭 중등 교육자회보 (2014.9. 제77호)에 실려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
화상도박경마장으로부터 교육환경 지키기에서 출발한 1년간의 여정.
성심여자중학교
임 태 연
제가 근무하는 성심여중·고는 과거 용산 신학교의 자리로서 그 한가운데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안치되었었던 예수성심성당이 있어 현재 성지로 지정된 곳입니다. 바로 이웃한 곳인, 신부님이 돌아가신 새남터 성지로 가는 길에 최근 지상 18층과 지하 7층인 총 25층의 초대형 화상도박경마장이 들어서면서 저희 학교와 지역주민들은 이 건물의 주인인 공기업 ‘마사회’의 사행산업에 대해, 연대를 통한 저항을 펼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내적으로는 이 산업이 우리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적 성찰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1년간 이 반대를 해 오는 과정에서 화상경마장이 지역을 어떻게 손상시키고, 한 개별 인간과 그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다른 지역의 사례를 통해 배우고, 일깨우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학교 가까이 위치한 이 건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마음으로 동의하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내면에서는 어떤 학습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것을 반대하는가? 내 지역에서만 몰아내면 다 해결되는가? 우리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우리는 저항의 근본적 동기에 대한 성찰을 날카롭게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다 분명하게 도와 준 것이 지난 6월 28일에 일어났습니다.
마사회가 임시개장이라는 명분하에 기습적으로 개장을 하는 덕분(?)에 저희들은 그곳을 들어오는 손님? 고객님들을 직접 보기 시작했습니다. 개장을 막기 위해 몸으로 저항한 저희들은 그분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욕설을 넘어서서 그 뒤에 숨은 그분들의 가난함은 저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곳을 들어오는 분들의 대부분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좌절과 무기력의 눈빛이었습니다. 중독이 갖는 가장 큰 특징. 즉 삶이 자기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는, 그래서 요행을 바라게 되는 가엾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을 들어오는 분들 중에 부유하거나 품위를 가진 분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가정을 몰살시켜 얻은 돈이, 저 거대한 세금으로 쓰이는 것임을 눈으로 목격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화상경마도박장의 민낯을 보는 것을 통해 저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를 보다 근본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두려워할 것은, 도박장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주변의 무질서한 퇴폐업소들과 취객들의 공포스러운 모습만이 아닙니다.
저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한명 한명의 영혼의 손상입니다. 지역의 평범한 서민들을 중독으로 몰아넣은 후 얻어진 거액의 수입이 세금수익이라는 명분 앞에서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용인되는 것을 소리 없는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각인시키는 손상입니다. 이는 판단의 힘을 앗아가는 지성의 손상이며, 자기 눈앞에서 인간성의 파괴를 목격하면서도 돈 앞에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양심의 손상인 것입니다. 이를 묵인하는 것은 우리의 반교육적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매주 경마장 앞에서 거행하는 미사 때의 강론입니다. “우리의 이 연대는 용산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는 대한민국 전체를 정화하는 상징적 저항이다.” 즉 도박장을 우리 구에서만 몰아낸다면 우리의 저항은 복음적 저항이 아니라 내 지역만 생각하는 동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저항을 통해 학생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은 인간성의 손상에 대한 깊은 연민과 분노, 그리고 연대의 기술일 것입니다.
우리의 이 싸움을 지켜본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한 침묵하는 구성원으로 겨우 생존하고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감히 바랍니다. 우리의 싸움을 지켜본 학생들이, 거대한 악 앞에서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에 깊이 아파하면서도 결코 무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골리앗 앞에서 손에 있는 돌멩이 하나로도 하느님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믿은 다윗의 기개, 그리고 울돌목 앞에서 어선 12척만으로도 200척의 왜선을 바수어버린 충무공의 슬기로움과 불멸의 용기를 닮은 구성원으로 커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