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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촛불시위에 대해서

보리아빠 이원영 2005. 5. 9. 11:17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최순영입니다. 오늘 오후면 한국의 학생들이 “입시위주 교육 반대”라는 외침으로 촛불을 들게 됩니다. 억눌리고 찌들린 삶에 희망을 달라는 학생들의 외침에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저 또한 한 학생의 어머니로써 학생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학생들이 만든 까페에 들어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어 봤습니다. 그 안에서의 학생들의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주장이었습니다. “우리를 시험보는 기계로 간주하지 말라. 우리를 교육정책의 피실험물로 사용하지 말라. 학교는 친구와 함께 도와가며 공부하고 자라나는 곳이지 오직 경쟁을 통해 대학진학만을 위한 곳이어서는 안된다!” 제 나름대로 학생들의 주장을 요약해본 것입니다. 소박하면서도 당연한 주장입니다. 학생들은 내신등급제를 반대하는 것이 본고사를 도입하라는 것으로 읽혀지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입시가 학생 하나뿐 아니라 온 가족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있는 나라. 대학입시에서 실패하면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는 나라.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나라.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닌, 그 사람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궁금한 나라. 대학이 줄지워진 것처럼, 사람들도 줄지워진 나라. 이런 나라에서는 우리 학생들, 학부모들 모두 피해자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대학과 사람을 한줄 세우기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 한, 학교는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공부하는 행복한 곳이 아닌, 시험 경쟁의 경기장일 뿐입니다.


삐뚤어진 이 사회가 지극히 정상적인 학생들을 죽게 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가고자 하는 학생들은 경쟁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우리 학생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입시위주의 학교와 사회에서 죽음을 택한 모든 우리 학생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명복을 빕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죽음을 택하지 맙시다. 여러분들에겐 이 잘못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혼자서 아파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함께 문제제기할 수 있는 여러분의 모습이 이 비정상적인 사회를 정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입니다.

혹자는 여러분들에게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대안을 내봐라”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대안이 없으면 문제제기 조차도 하지 말라는 억압의 또 다른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외침은 정당합니다. 그 외침을 듣고 교사, 학부모, 정치인, 교육부, 대학들이 깊게 고민하여 답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저는 민주노동당 교육위원회 국회의원으로써 여러분에게 이 잘못된 교육과 사회를 바꿔나가는 방향에 대해서 제안해보고자 합니다.

내신중심의 대학입학전형의 기본 방향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하나의 줄세우기 방식이나 사교육을 조장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수능이라는 시험 하나로 한사람의 운명이 정해지면 안 됩니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학입학이라는 그것 하나로 한 사람의 운명이 정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신 등급제는 모든 학생들을 단지 시험 성적 결과에 따라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서열을 메기고 있습니다. 교육은 교과 성적만이 아닙니다. 교육은 개인의 관심과 특기, 꼭 학교 공부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잠재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수많은 활동들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점수로 환산되지 않는 인간의 여러 측면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신은 단지 시험 성적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손쉽게 평가하고자 하는 어른들의 오만함이 학생들을 점수라는 숫자에 가두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외침 중에서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들려왔던 말이 있습니다. “친구가 적으로, 경쟁자로만 느껴져요”, “서로 돕고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서로 경쟁하여 누르려고만 하게 되요”. 모든 교육은 경쟁이전에 서로 협동하면서 이끌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교육은 순위를 메기는 것 이전에 한 사람 한사람을 그 자체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년 08입시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었을 때, 저를 포함한 많은 교육사회단체들이 상대평가제의 문제를 우려했습니다. 내신의 기본은 줄세우기가 아닌,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풍부한 성장기록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절대평가를 받아들이기 에는 학벌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내신부풀리기의 문제가 있다면, 상대평가의 요소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제라도 고교내신은 한 인격체의 전체적인 성장기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상대평가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최소화하여 우리 학생들이 친구를 적으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본고사를 부활하겠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고사는 결코 실시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울대가 “논술형 본고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논술형 본고사”라는 말은 결국 형식은 논술이지만, 실제 내용은 본고사라는 말입니다. 작년 국정감사 때 일선 대학에서 실시했던 논술고사 시험지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말이 논술이지, 사실은 본고사 그 자체였습니다. 수리형 논술, 언어형 논술, 과학형 논술, 영어형 논술, 논술이라는 말은 외피에 불과했습니다. 본고사가 부활하면 우리 학생들은 결국 이중, 삼중의 시험고통 속에 빠지게 되고, 본고사 대비를 위한 사교육 열풍 속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의 학생들만 유리해 집니다. 보다 종합적이고 깊은 지적 소양에 대한 교육은 대학입시 교육에 메몰되지 않은, 정상화된 고교교육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수능 또한 최소한의 자격고사로 전환되거나 폐지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고교교육이 정상화 된다면, 더 이상 전국고사를 통해서 학생들의 등급을 새로이 나눌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교육부가 3불(不)정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고사, 고교 등급제, 기여입학제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습니다. 서울대가 본고사를 하겠다는 발표에 처음에는 반대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 허용가능하다는 식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학생, 학부모들이 정책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교육부는 학생, 학부모들이 정말 교육부를 신뢰 할 수 있도록 흔들리지 않는 자기 입장과 정책추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의 촛불집회에 징계운운하기 이전에 교육부는 자기 자신부터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학교간 학력차이를 말하면서 고교등급제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학교간 학력차이가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기본 체제인 고교 평준화 정책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평준화 정책은 입시전형에서만 통합전형을 하는 이른바 “뺑뺑이 평준화”일 뿐입니다. 학교간 학력차를 말하기 전에 진정한 평준화 완성을 위해 교육환경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고교 등급제를 도입하면 고등학교도 대학과 같이 일렬로 줄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아마도 촛불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여러분뿐만이 아니라 어린 중학생, 초등학생 동생들까지일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을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기계로 살아가게 만들 고교 등급제는 절대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기여 입학제는 당연히도 또한 절대적으로 불가합니다. 돈이 학벌을, 학벌이 권력을 낳고 또 논을 낳는 부정의 순환 고리는 깨어져야 합니다.


여러 대학들에서 변별력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대학들에게 정말 묻고 싶습니다. 우리 대학들은 순위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성적을 가진 학생들을 뽑느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학의 서열을 유지해야만 대학의 존엄이 서는 것은 아닌데도 말입니다. 점수 몇점 차이로 대학의 서열을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 까요? 그렇게 메겨진 서열이 그렇게 자랑스러울까요. 점수 몇 점 차이로 한사람의 인생을 갈라놓고, 평생 어느 대학 출신이라는 딱지붙이기가 과연 진정 대학교육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스스로의 서열구조 속에서 얻는 달콤함을 잊지 못하기 때문인가요? 몇 개 대학이 함께 모여서 통합입시전형을 하고 공동학위를 주면 어떨까요? 그래서 나는 어느 대학 학생이라는 우쭐함이나, 나는 어느 대학 학생이라는 초라함을 떨치고, 서열구조에 안주하는 대학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진정 선발중심이 아닌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대학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려운가요?


학생 여러분, 오늘 집회는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자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외침은 정당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외침이 우리 교육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도록 저 또한 경청하고 함께 고민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시험에서의 경쟁자가 아닌,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저 또한 여러분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05년5월7일

최순영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