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항아리, 완벽한 숙성발효 저장고 | ||
2009 01/06 위클리경향 807호 | ||
식습관을 바꾸자 흙으로 빚어 ‘숨 쉬는 식품보관소’… 김치·된장·젓갈 등 한국의 맛 담아
한·중·일 3국의 전통적인 밥상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일본 사람은 온 식구가 모여 식사를 할 때도 가족 수만큼 독상을 차린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겸상에 온 식구가 옹기종기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중국이 주 메뉴 위주의 식단을 차린다면 한국은 밥과 국 위주의 식사를 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은 차이가 난다. 한국과 중국은 밥상 위에 젓가락을 가로로 놓는 반면 일본은 세로로 놓는다. 식사하는 모습도 다르다. 일본 사람은 밥그릇을 들고 입에 댄 채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다. 중국인은 식탁에 팔을 괸 채 밥을 먹는다. 한국인은 밥그릇을 식탁에 그대로 두고 숟가락을 사용해 식사를 한다. 숟가락은 한국의 국물 위주의 음식 문화를 상징한다. 그뿐 아니라 밥상에 놓인 그릇이 주는 느낌도 다르다. 일본인의 밥상에는 똑같은 모양이나 무늬의 그릇을 사용하는 법이 없다. 그릇의 색깔도 여러 가지다. 김태영 강원대 교수는 “장식과 모양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습성이 식단에도 반영된 것”이라면서 “일종의 ‘푸드 코디’가 그릇에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철저히 실용주의적이다. 이름깨나 알려진 일류 식당에서도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간 그릇이 식탁에 오르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깨진 그릇이 많이 있는 식당은 그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화의 바람을 탄 중국도 최근 들어 깨진 그릇을 사용하는 일류 식당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똑같은 무늬와 모양의 그릇을 세트로 쓰는 게 보통이다. 한국 발효식품 탄생 결정적 역할 음식과 첫 대면도 매우 중요하다. 음식을 맛보기 전에 보는 것만으로도 음식의 맛은 이미 결정될지도 모른다. 식당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으면 음식 맛도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릇이 음식 맛의 본질은 아니다. 양덕춘 경희대 교수(한방재료가공학과)는 “우리의 조상은 완성된 음식의 맛을 통칭해서 ‘손맛’이라고 했다”면서 “‘손맛’에 숨어 있는 의미는 음식을 만들면서 사용한 재료, 밑간, 발효 정도, 적절한 온도, 음식 용기까지 포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맛에 미묘한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요리 전문가들이 음식을 잘하는 요령으로 음식 원재료의 특성을 인식하고 그릇의 재질을 파악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꼽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재료가 잘 물러지는지, 물기가 얼마나 배어 있는지, 쪼글쪼글해지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소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그릇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먹음직스러워 입맛을 당기기도 하고 앗아가기도 한다. 굳이 요란하게 장식할 이유는 없으며 오목하고 움푹 패기도 하며 널찍하고 반반한 걸 고르는 건 요리의 기본이다.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용기다. 그릇은 음식을 담는 용기에 그치지 않고 음식을 만든 그릇이라는 점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특히 배가 불룩한 옹기는 한국을 숙성 발효 공학의 지적 재산을 보유한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옹기가 없었다면 세계적 건강 음식으로 꼽히는 한국의 김치, 된장, 청국장, 젓갈이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김치는 식물성도 동물성도 아닌 묘한 복합 음식으로 칼슘과 인, 비타민 등이 풍부하며 채소 본래의 영양가를 보존하면서 새로운 맛과 향을 지닌 한국 고유의 발효과학 식품이다. 이런 김치를 오랫동안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고안하여 만든 것이 바로 항아리다. 음식의 변질 최대한 막아 옹기는 숨쉬는 그릇이라고 불린다. 숨을 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옹기를 빚을 땐 태도라고 불리는 흙을 사용한다. 태도는 작은 모래 알갱이가 수없이 많이 섞여 있는 거친 흙이다. 옹기의 겉에 바르는 유약도 낙엽이나 풀 따위가 섞인 약토(부엽토)와 재를 쓴다. 일종의 자연유약이다. 때문에 옹기에 성분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더욱이 가마 안에서 고열로 굽는 동안 그릇 표면에 미세한 숨구멍이 생긴다. 류사이트(Leucite)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옹기 기벽의 숨구멍(기공)이다. 기공의 크기는 1~20㎛이다. 신선한 공기는 0.00022㎛의 틈만 있으면 이동이 가능하다. 항아리의 호흡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철에 장항아리를 열어보면 하얗게 소금기가 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용기가 숨구멍을 통해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항아리가 생물들이 나고 자라는 바탕인 흙과 가장 유사한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양덕춘 교수는 “할머니들이 겉을 자주 닦아주는 이유가 바로 항아리가 숨을 잘 쉬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옹기는 사계절이 뚜렷한 독특한 자연환경과 풍토에 맞도록 배가 부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이 형태는 태양열과 복사열은 물론 통풍까지 고려해 옹기 속에 들어 있는 음식의 변질을 최대한 막도록 고안한 장치인 것이다. 발효저장시설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응교 DSK엔지니어링 대표이사(공학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독일 바이오매스 플랜트 메탄발효시설의 핵심 기술인 숙성발효 항아리 시설은 우리 고유의 맛을 만들어내는 김칫독 항아리와 유사하다”면서 “발효저장시설인 항아리의 구조적 안정성은 매우 놀라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안정적 구조가 쌀벌레와 곰팡이를 자연적으로 막아주는 효과를 만들 뿐 아니라 김치나 각종 젓갈 등을 맛깔스럽게 발효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부 정소윤(여·45)씨는 “쌀을 플라스틱 쌀통에 보관했을 땐 겨울에도 쌀벌레가 생겼다”면서 “항아리 쌀독으로 바꾼 뒤에 여름에도 쌀벌레는 구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항아리가 없었다면 김치와 된장이 21세기의 건강식품으로 등장할 수 없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한 숙성 발효의 기계’인 항아리를 많은 분야에서 응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미개척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항아리를 통한 새로운 숙성 음식 개발은 생화학 분야의 일대 혁신이며 발효효소가 부족한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아름다움과 건강의 질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한국인의 자산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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