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갈기

[스크랩] <함께 느끼고 싶은 이야기> 여름아이-국세현

보리아빠 이원영 2013. 7. 24. 02:50

여름아이

바람이 불었다.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지난 밤, 퍼붓듯이 비가 왔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언제 그런 비가 왔냐, 싶게 말짱한 하늘이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아침 인사가 공교롭게도 간밤의 비였다.

“어젯밤에 나, 비오는 거 봤어!”

“나도 깼었어.”

그런 탓에 자연스레 아침밥 먹는 자리는 곧 지난 새벽에 ‘내가 본 비’를 자랑 하는 자리가 되었다. 자랑이 흥겨워지자 허풍이 섞이기는 했지만 모처럼 생태수업을 하는 듯 아이들과 비이야기를 시원스레 하는 아침이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저녁 무렵이면 일기장을 펼친다.

때때로 아이들은 날씨에 관한 일기를 쓰기도 하지만 날씨에 관한 것은 이미 일기장이 알아서 해준다. 저학년 아이들의 일기장은 특히 그렇다. 일기장 상단에는 해,구름과 해, 구름, 비, 눈 그림에 동그라미를 치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집 둘째 아이는 그것이 매번 고민스러운 모양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동그라미를 하나에만 줄 수 없어서이다. 새벽에는 비가왔고 아침에는 말짱한 해, 낮에 보았을 때는 한없는 뭉개구름이 뭉실뭉실이었으니 아이는 눈사람 그림에만 동그라미를 치지 않고 모두 동그라미다. 재밌다. 하지만 아쉽다.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 글 모음 [우리도 크면농부가 되겠지]에는 아이들의 날씨 일기가 실려있다.

 

4월 12일 금요일

오늘은 구름이 때때로 낍니다. 아이들이 비가 오겠다 합니다. 나도 참말로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구름이 자꾸 낍니다.

아침에는 구름이지만 조금 있으닌까 빛이 납니다. 그래 또 조금 있으니까 날씨가 흐립니다. 바람은 안 붑니다.

 

5월13일 월요일

오늘은 날씨가흐리고 산에 안개가 하얗게 끼어 있다. 오늘 암만 캐도비가 오겠다고 생각이 났다.

 

5월 26일 일요일

오늘 아침질에는 흐리다가 점심때부터 날씨가 자꾸 더 흐려져서 저녁 바람부터 비가오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비가 와서 땅이 질어서 땅을 밟으니 똥같이 쑥 나왔다.

 

이런 첫머리의 일기들을 보면 아쉬움보다는 신기하고 기특하다.

그러면서 나 또한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 보게 되고 바람의 살결을 느끼고 싶어진다.

아이들 이전에 나 먼저 하늘냄새와 땅냄새, 바람과 햇살의 냄새를 맡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씨앗의 다양성이 자본의 논리 속에서 획일화 되어갈 때 씨앗을 지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매일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날씨를 우리 몸에 체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매일의 새로움을 놓친다면 어디쯤에서 새로움을 찾을까.

 

9시뉴스에서 전하는 일기예보에 갇히면 날씨는 때때로 경계해야 할 위험성 물질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대비책을 세워야 할 날씨도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햇살과 바람에 내 몸을 맡기며 그것을 느끼는 것도 소중하고 소중하다.

 

 

얼마 전 둘째 아이의 일기가 생각난다. 친구가 놀려서 울면서 학교로 걸어왔는데 걸어오는 내내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한 둘째 아이의 일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울면서 학교에 왔다. 공원에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불었다.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안아주고 햇살이 함께 웃어주고 땅이 간질이는 것을 느끼는 여름 아이!

 

여름 아이들이 무럭무럭 크는 7,8월은 아이들의 방학이다.

 

하늘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느끼자!

 

2013년 7월 22일

 

<국세현 기자-용산연대 공동대표>

 

출처 : 용산마을신문
글쓴이 : 보리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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