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갈기

나희덕 시인의 못위의 잠

보리아빠 이원영 2015. 12. 29. 10:40

엊그제 용산 주민들이 만든 어설픈 극단의 창단공연을 아이들과 보았습니다.

'아빠들의 소꿉놀이'라는 제목의 연극이었습니다.

해고당한 가장의 서글픈 현실을 재미있게 표현한 연극이었습니다.

우스운 장면과  대사에도 마음 한편은 무거웠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못위의 잠'을 읽노라니 아빠들이 소꿉놀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못 위의 잠-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잠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봅니다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 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 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 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