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갈기

내가 본 국회의원 최순영

보리아빠 이원영 2007. 6. 28. 00:55

인자무적 최순영

이원영(최순영의원 정책보좌관)

최순영 의원보좌관 일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2004년 6월부터 시작했으니까 햇수로는 4년 째다.
최순영의원은 이른바 공순이 출신이다. 대학 다니다 노동현장에 들어간 사람들은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졸이거나 대학 중퇴이지만 최순영의원은 학력이 높지 않다. 어디까지 나왔다고 말하지 않아서 또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높지 않다’정도로 학력을 정리했다. 그래서 최순영의원의 경력에 학력은 아예 기재를 안 한다.
웃음 많고 수줍음 많던 나이에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와 가발공장노동자로 서울생활을 시작해 노동조합 일을 하고 악덕 기업주와 싸우다 민주화운동을 하고 결혼한 이후에는 지역에서 노동, 여성, 시민, 환경운동을 말 그대로 두루두루 했다.
그러다가 시의원도 두 번이나 했다. 무소속이었는데 선거운동을 돕고 의원활동을 돕는 주민 지지자가 많았던 것은 주민들과 함께 해온 시민운동가의 장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좌관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최순영의원은 매우 보고 들은 게 참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 즉 견문이 넓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살아온 이야기와 주위 분들 말을 들어보면 인생이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이고 시민운동의 역사였다.

최순영의원은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감정조절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최순영의원을 부드러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 보좌관 입장에서는 몸에 밴 민주주의적 성품에다가 부드럽기까지 하니 보좌하기 편한 의원임은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민주노동당 다른 의원실 보좌관들이 편한 자리에서 “최순영의원과 함께 하고 싶다, 부럽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또, 진담인지 농담인지, 그냥 인사치레인지는 잘 모르지만 피감기관인 교육부, 교육청 사람들은 최순영의원이 상당히 많이 괴롭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의원’이라고 말한다. 똑같은 말(잘못에 대한 지적, 비판)을 해도 감정 상하지 않게 한다는 점을 이유로 댄다.
반면에 그런 점이 보좌관들은 가끔 불만이기도 하다. 잘못을 좀 강하게 지적하고 따져야 하는데 보좌관들이 주문(?)한 대로 안하기 때문이다.
옛말에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는데 최순영의원의 이미지가 꼭 그렇다.
그런데 아닌 경우가 있다. 사학비리 등 교육비리 문제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학생인권 침해 등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게 표현한다. 어떤 이가 그 모습을 보고 “말씀이 추상(秋霜-찬서리)과 같았다”고 감탄한 적이 있다.

 

<4월말경에 써봤습니다. 최순영의원 아자!>

최순영의원이 스스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국회의원 최순영의원이 있기까지는 남편의 힘이 컸다고 본다. 얼마 전 돌아가신 황주석선생님을 생각하면 바쁜 의정활동 가운데 불에 데인 것처럼 가슴 아픈 일도 많이 있었을 것이라 걸 짐작할 수 있다. 힘든 내색을 주위에 안하는 편이라 그 아픔이 대부분 가려져 있었지만...

이제 17대 국회의원 임기도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최순영의원이 장애인교육, 학교급식, 대학등록금, 실업교육, 학생인권 등 다양한 주제들을 힘없는 소수 정당의 의원임에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해왔다고 나는 자부한다.
남은 기간도 지금처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의정활동을 펼쳐 뿌린만큼 거두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예전에 한겨레 신문에 실린 정혜신 칼럼을 칭찬이지만 채찍질로 삼기를 바란다.

<정혜신 칼럼> 각성은 이미 빛나는 달성 [한겨레 2004-11-28 20:30]  
“...앞글 생략...
이런 상황에서 초선의원들의 마음고생을 말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인들에게 그런 염치가 어디 있겠냐고 핏대를 올린다면 그 역시 구태의연한 작태다. 싸잡아 매도하지 않고 찬찬히 살펴보면 쉽게 삿대질할 수 없는 초선의원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이룬 개혁의 성과도 적지 않다. 나는 그런 초선의원의 이름을 한 30명쯤은 숨도 쉬지 않고 거론할 수 있다. 나의 경우 그 이름의 맨 꼭대기에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있다.
최 의원이 17대에서 가장 능력이 출중하고 성실한 입법기관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각성’을 늘 되뇌는 그의 의정활동은 발군이다. 최 의원은 <문화일보> 국감평가에서 교육위 소속 의원 가운데 1위, <경향신문> 평가에서는 여성 의원 가운데 1위에 올랐다. 국감이 파행을 겪을 때,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숱하게 들었던 ‘정치인들 싸움질 좀 하지 말고 경제나 챙겨라’는 비난을 듣는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최순영의 고백은 신음처럼 들린다.
그는 ‘각성은 그 자체로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의 삶 자체가 각성의 연속이었다. 십대 후반에 ‘공순이’ 생활을 시작해 스물여섯에 노조위원장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유신정권 붕괴의 기폭제가 된 1979년의 와이에이치(YH)투쟁을 이끌어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노동운동가다. 80년대엔 노동자를 위한 최초의 탁아시설 개원, 결식아동을 없애는 최초의 학교무료급식 등의 시민사회 운동을 전개했고, 90년대엔 8년 동안 부천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의 많은 현안들을 의미있는 결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한 각성의 결과물이 17대 국회의원 최순영이다.
일생의 매순간, 매상황마다 각성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다. 천둥소리에도 잠을 깨지 않는 아기 엄마가 아기의 작은 울음소리에는 즉시 잠을 깨는 것처럼 저마다 유별나게 각성상태를 보이는 사안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성향이나 기타의 이유로 최순영의 이름을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 내 개인적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순영으로 상징되는 ‘각성상태의 초선의원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이 정치개혁을 앞당기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정치학회가 17대 의원 229명을 상대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17대 국회의원 중 가장 진보적인 의원’ 1위는 최순영 의원이었다. 장애인교육권 확보, 결식아동문제 해결, 분만휴가, 이주노동자단체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그동안 최 의원이 집요하다 할 만큼 매달려온, 그 당연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찾는 일들이 진보를 뜻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진보주의자가 되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각성은 그 자체로 이미 빛나는 달성이라는 정치인 최순영의 말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