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이야기

용산시민연대 용산정비창 주변 다크투어 참가 후기

보리아빠 이원영 2022. 10. 25. 17:44

용산시민연대 용산정비창 주변 다크투어 참가 후기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지만 길면 읽기가 어려울 것 같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벌어졌다. 용산역 건너편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을 하던 세입자들을 경찰 특공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벌써 13년이 흘렀다.

용산역광장에서 시작해 용산정비창, 이촌고가교, 용산참사 현장을 둘러보는 30번째 다크투어를 용산시민연대에서 진행했다. 안내는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활동가(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가 맡았다.

 

용산역은 일제 강점기부터 수탈과 지배의 상징이었다. 현재는 현대아이파크라는 이름의 민자역사로 운영되고 있다. 하루에 수십만명이 이용하는 공간임에도 기차역사공간은 10%밖에 되지 않고 큰 쇼핑몰이라는 영리의 공간으로 설계되어 운영되는데 이 때문에 용산역 광장조차도 시민들이 집회 및 행사 목적으로 이용하려면 현대산업개발의 사용동의를 받아야 한다.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30년이라는 긴 시간도 문제이지만 용산역이 대합실 부족 등 시민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지 못한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용산역에서 전자상가쪽으로 이동하려면 구름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구름다리에서 홈리스(노숙자) 텐트촌을 둘러보았다.

텐트촌에는 2000년초반부터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했는데 새로 공중보행교 공사가 진행되면서 일방적으로 다리 기둥 기반공사를 이유로 이주대책도 없이 텐트촌을 이동하라는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홈리스행동 등 시민단체가 안전한 주거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숙자 대책에 대한 행정의 태도 변화는 쉽지 않지만 우리가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구름다리에서 전자상가쪽으로 이동하면 게임프로그램 등을 판매하는 곳이 나온다. 철거와 개발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건물자체가 점점 황량해져가고 있었다.

 

용산정비창 부지 공사를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마사회 장학관에서 잠깐 멈추었다. 다크투어 참석자 대부분이 5년동안 화상경마도박장 반대운동에 참여했었다. 바닥에 새겨진 상징물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매주 주말마다 집회하고 농성하던 곳이 이제는 용산의 역사를 기억하고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다크투어에 함께하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이 공간의 의미를 개략적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도박장이 될뻔한 공간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농어촌학생 기숙사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의 험난한 노력 때문이었다.

 

서부이촌동에 드넓은 용산정비창 공사현장이 펼쳐진 출입문이 위치해 있다. 지금은 토지정화작업을 진행중이다.

축구장 70개를 합쳐놓은 50만제곱미터의 공공토지에 공공주택이 지어지길 바라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현재는 서울시와 코레일이 국제업무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오세훈 시장은 과거 2005년부터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이런 계획을 세웠었는데 중간에 무산되기도 했었다.

서울지역의 주거, 빈곤, 노동,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투기개발이 아니라 무주택 시민을 위한 100% 공공주택 개발을 촉구하는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개발로 수십억, 수백억을 벌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요구가 반영되는 개발은 요원하지만 계속 촉구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촌고가교에 올라 참여자가 그리는 도시설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저마다 투명한 비닐에 공공주택과 병원, 학교 등을 그려서 사진을 찍었다.

 

다시 마지막 다크투어 장소인 용산역 쪽으로 이동하다보면 '땡땡거리'라는 곳이 나온다.

인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아이유, 이선균 주연) 촬영지로 유명해선지 젊은 사람들이 철길을 바라보고 저마다 몸짓으로 사진을 찍느라고 바쁘다.

 

걸어서 10분정도 가니 2009년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이다.

현재는 용산센트럴파크 헤링턴 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참 아파트 이름도 길다. 이곳에 13년전 철거세입자들의 망루 농성, 강제진압,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2009년 당시 서울시 오세훈 시장의 국제업무지구단지 대규모 개발 계획들이 추진되며 용산 일대 개발 속도에 불이 붙었다.

빠른 인허가가 나며 적은 보상금만을 받고 쫓겨나야 했던 상가 세입자들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점거 농성을 시작했고, 국가가 이 농성을 초기부터 진압하기 위해 테러 진압 전문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화재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용산참사‘다.

참사 당시 72세로 사망한 이상림씨의 유품 중에는 용산구청의 공문이 있었다.

해당 공문은 앞서 이씨가 관리처분 인가를 앞두고 법적인 보상협의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으니 보상협의회가 개최될 때까지 관리처분 인가를 내주지 말아 달라는 민원에 대한 회신 공문으로, “보상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관리처분 인가를 미룰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해당 공문을 가슴에 품고 망루에 올라갔다 사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10개월 후, 더욱 원통한 일이 발생했다. 2010년 10월 법원이 용산 4구역 관리 처분 무효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절차적 하자, 즉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고 가짜 도장을 찍는 등의 행위로 서류를 제출한 것이 소송을 통해 드러나면서 관리처분 무효라는 판결이 났지만, 누구 하나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용산참사 후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유가족들은 아직까지 용산참사의 원인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출처 : 투데이신문 2022.07.29.)

 

이번 다크투어는 투기와 개발의 땅, 용산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준비했다.

개발, 투기로 대한민국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는 주택개발이 모두가 주거권을 누릴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용산이라는 비싼 땅에서 50만제곱미터의 공공부지가 공공주택개발이 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크투어를 마무리할 즈음 어둑어둑해지고 바람은 더 차가워졌다.

올해 폭우에 가난한 세입자들이 목숨을 잃었듯이 용산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용산다크투어는 참가자 10명 안팎이면 신청을 할 수 있다.

#문의는 빈곤사회연대 02-778-4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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