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밭갈기

<후회 막시무스> 제천 여행을 다녀오면서 후회와 부러움이 밀려오더라.

보리아빠 이원영 2026. 4. 29. 22:43

<후회 막시무스> 제천 여행을 다녀오면서 후회와 부러움이 밀려오더라.

나의 꿈은 농부로 늙는 것이었다.

나와 친한 이들은 알고 있는 나의 꿈. 언젠가부터 나는 농촌생활을 꿈꿨고 농사일을 하면서 농부로 늙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도 도시생활을 한다. 일년에 10번 이상 시골로 가서 농사일을 쥐꼬리만큼 하지만.

왜 농부가 되고 싶었을까? 돌이켜보면 도시생활이 싫었다.

초중고를 양평에서 다니고 서울로 대학에 입학하니 향수병이 나를 아프게 했다.

답답한 도시가 나를 옭죄고 억누르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시골에 가면 마음이 늘어지게 편안했다. 힘든 농사일도 나쁘지 않았다. 잘은 못하지만 시골 출신이라 이런 저런 농사일을, 부모님을 도와 하면서 내 성격과 체질에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서른 중반에 결혼을 하고 부모님께 이야기해서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했었다. 결혼한 배우자도 동의를 해서 농부가 될 시점에 새로운 일(국회의원 보좌관)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도시에 묶여 있는 신세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은 하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계속 미루고 있다.

삭막한 도시에서도 농사를 해보았다.

도시농업이 한창 붐을 일으켜서 이런 저런 작물을 한강 노들섬 텃밭과 이촌동 가족공원 등에 심어 가꾸기도 했다. 용산에 도시농업모임이 있어서 도시농부학교도 열고 이런 저런 사업을 열심히 했다. 물론 시골 땅 농사만큼 좋지는 않았다. 삶이 정신없이 바빠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 해는 용산 사람들과 충북 음성의 땅을 1천 평 정도 빌려 2주에 한 번씩 오가면서 감자농사, 들깨농사를 짓기도 했다. 땅이 넓어 함께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많이 힘들어했거니와 서울에서 100킬로나 떨어진 곳에 농사를 짓는 게 참으로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잊지 못할 즐거운 농사의 추억이었다.

용산시민연대 회원들과 양평 시골집에 가서 농사일을 함께하기도 했다. 두세 시간 일하고 고괴 구워먹고 놀고 그랬다. 현명하신 어머니는 “일을 많이 시키면 힘들어서 다시는 안 온다.”라며 적당히 일거리를 주셨다.

함께 시골에 가서 농사일을 여러 번 한 사람들한테는 어머니가 특별히 참기름, 들기름을 한 병씩 선물하기도 했었다.

제천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선배를 보고

지난 주말 외대민주동문회에서 버스 한 대를 빌려 제천 여행을 다녀왔다. 첫째 날은 금수산 산행을 했다. 둘째 날은 그곳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선배의 과수원을 함께 갔다. 한참을 걸어 올라간 산기슭에 새하얀 사과 꽃이 만발해 있었다.

15년도 전에 몸이 죽을 만큼 아파서 직장을 그만두고 제천 시골로 내려와 농사일을 하는 선배는 우리들에게 자연농법 사과 농사에 대한 철학을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사과농사에 자신의 인생 가치를 온 몸으로 반영이라도 하는 듯이. 프로그램 상에는 사과 꽃 따기였는데 그 일은 안 시키고 온갖 풀 가득한 사과밭에 심겨져 있는 부추와 땅 두릅을 채취할 시간을 주었다. 다들 신나게 집에 가져갈 나물을 뜯었다.  

제천의 사회적기업인 베트남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인근 찻집에서 그 농사꾼 선배는 지역 마을신문 편집장 명함도 한 장씩 나눠주었다.

함께 여행한 사람들은 따뜻한 환대와 아름다운 시골풍경에 행복을 선물 받은 것처럼 즐거워했다.

나는 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시골에 가고 싶은 마음은 늘 굴뚝같은데 조건을 탓하고 6환갑이 지나면 가야지 계속 미뤄 왔었다. 마땅히 먹고 살 것도 없다며 핑계를 대곤 했다. 시골생활을 잘할 자신도 없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부럽게 느껴졌다.

시골 생활을 한다면 1순위 지역은 고향 양평이지만 2순위로는 강원도 영월, 정선 쪽을 생각도 했었다. 충북 제천도 후보 지역에 올려놓아야겠다. 제천에는 용산에서 동자동사랑방 활동을 하다 귀농하여 애 셋을 낳아 키우는 병천 형도 있고 인근 동네에서 사는 김 목수(목사)도 있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참 많지만 혈기왕성한 적절한 시절에 시골로 내려가지 못한 것이 제일 앞 부분에 놓인다. 그 때가 30대 중반 시절이었으니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후회 막심한 인생이다.

좋은 데를 즐겁게 다녀와서 왜 후회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