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지붕(11.26)
나는 산골마을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초가집 지붕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여름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지붕 위에 떠오른 달을 바라보면서 엄마와 동네누나들이 수다를 떨었던 것을 기억한다.
마당 한 켠에서는 풀을 태우는 모깃불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시골집 처마 밑에는 해마다 봄이면 제비가 흙 집을 짓고 알을 낳아 어린 새끼를 키웠었다.
언제인지 초가집 지붕이 슬레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시골집에 밤에도 대낮같이 환한 전기불이 들어왔다.
슬레트 지붕은 비가 오면 따각따각 물소리가 났고 지붕 골을 따라 졸졸졸 빗물이 봉당 아래로 떨어졌다.
지붕은 바뀌었지만 마루며 불 때는 아궁이는 그대로였다.
나무 마루 아래에는 무릎 높이로 공간이 널찍하게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강아지도 들어갔다 나오고 집에서 키우는 닭들도 수시로 들락날락했었다. 마당 한 켠에는 소를 키우는 허름한 외양간과 나무를 쌓아놓는 헛간도 있었다.
겨울에는 그 헛간에 나무더미가 가득했다. 아버지가 산에서 해온 나무를 아궁에 불을 때서 온돌도 덥히고 소죽도 쑤었다. 가끔씩 그 나뭇간에서 닭들이 낳아놓은 노란 알들을 꺼내곤 했었다.
어느 샌가 옛날 부엌이 바뀌었다.
부엌의 아궁이를 없애고 방에 기름보일러를 설치했고 싱크대가 자리를 잡았다. 안방에서 나와 신발을 신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입식 부엌이 만들어진 것이다.
마루도 나무마루에서 시멘트바닥으로 바뀌었고 넓은 마루 창틀에 유리문이 생겼다. 이른바 샷시를 설치한 셈이다. 그 때부터 시골집은 제법 현대식으로 변모한 셈이다.
10여년 동안, 내가 대학을 나오고 결혼한 직 후까지 그 모양을 유지했다.
어느 때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버지는 땅을 판돈으로 집을 다 허물어 버리고 번듯한 양옥집을 지었다.
집터 뒷밭 비닐하우스에다가 가구며 냉장고며 세간살이를 모아 놓고 아버지 어머니는 집을 다지을 때까지 몇 달 동안 그곳에서 지내셨다.
아버지는 건축업자한테 맡기지 않고 손수 목수, 미장공, 전기공, 장판, 도배업자를 불러서 직접 우리 집을 지으셨다.
그 업자들은 고향을 떠난 동네 형님이거나 그런 종류의 대부분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양옥 집이 완성되고 나서 우리 형제들은 주말에 모여 페인트를 사다가 집 바깥쪽에 도색을 했다.
기름보일러에서 심야전기 보일러로 바뀌었고 사계절 언제나 따뜻한 물이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왔다.
초가집 지붕은 이제 생각도 잘 안 나고 우리 시골집 옥상은 시멘트 바닥으로 변화 없이 10여년을 흘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이 조금 지나자 나는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지붕에 2층을 올리면 좋겠는데”, “이제는 지붕 방수공사를 해야 하는데...”
방수처리를 안하고 10년이 지나니 아주 조금씩 빗물이 벽을 타고 스며드는 중이었다. 바깥쪽 벽 쪽에 붙여진 안방 벽지에 습기가 차고 조금씩 색깔이 누렇게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방수공사를 할 여윳돈도 없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더불어건축협동조합 형님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날짜를 잡고 함께 가자고 선뜻 시간을 내주었다.
미리 공사할 방수액을 주문했다. 36만원어치를 사서 시골집에 바로 도착하게 해놓았다.
11월 중순 일요일 아침 일찍, 한동화선배 차를 타고 일꾼 5명이 용산에서 양평시골 집으로 출발을 했다. 아침에 도착해 옥상에 올라가서 세 시간을 5명이 열심히 롤러와 붓으로 칠했다. 옥상에 올라 열심히 붓질을 하며 한적한 시골 마을을 내다보는데 작년 여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평상시에 안쓰던 근육을 쓰고 안하던 일을 해서 그런지 한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욱씬욱씬 대었다.
김교영 선배, 한동화 선배, 일식 형, 규수 씨는 서로 질세라 열심히 방수작업을 했다. 여럿이 일을 하니 금방 일이 마무리 되었다.
올겨울 눈이 많이 내려도 이제 옥상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뒤늦게 포항 갔다가 부부가 함께 올라온 권용하 선배가 과메기 음식 세트를 사와서 돼지고기, 닭고기 구이 함께 점심식사를 맛있게 했다.
어머니가 엊그제 담근 청국장 찌개 한 그릇을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 비웠고 고된 노동을 한 후의 끼니라 그런지 다들 배부르게 “맛있다”를 연발하며 따뜻한 장작불 주위에서 야외 식사를 즐겼다.
시골집 지붕은 현대식 딱딱한 시멘트로 변했다.
초가지붕처럼 볏짚을 얽어맨 시골집은 까마득하게 사라진지 오래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정 많았던 아버지가 더 생각나고 착한 어머니가 살아계신 시골집은 아직도 남아 있다.
내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고향마을.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운데도 자주 가지 못하는 고향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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