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이야기

[숨겨진 이야기] 모델하우스 불 피해주민은 쪽방촌 사람들이었네

보리아빠 이원영 2010. 1. 28. 20:06

모델하우스 불, 피해주민 건설사, 용산구청 속수무책 분통


27일 아침에 용산구 갈월동 현대아이파크 모델하우스에 큰 불이 났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근 쪽방주택에 불이 붙어 주민들 60여명이 대피를 해야 했다.

각종 언론에는 인명피해가 없었으며 불나는 사진이 보도되었다. 화재가 난지 이틀째 피해주민들은 인근 경로당에서 임시거처를 하고 있다.

 

28일 오후 불에 탄 모델하우스와 피해주민들이 모여있는 그 경로당에 찾아가 보았다. 모델하우스는 불길이 얼마나 강했는지 상상이 갈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는데 철골이 불길에 녹아 오뉴월 엿가락처럼 구겨진 상태였다. 모델하우스에서 채 2-3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는 쪽방촌 건물은 유리창이 깨져있기도 하고 일부 배수관이 불에 탄 흔적이 보였다. 지붕이 허술한 슬레이트여서 불을 끄는 과정에서 집집마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물이 흥건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피해주민들이 모여있는 인근 경로당의 문을 여니 피해주민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노인들이다. 한두 평 쪽방에서 힘겹게 사는 노인들이 보금자리를 떠나 숙식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염천교회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적십자사에서 구호물품을 제공했다고 주민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불났던 상황을 이야기를 하다가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유를 요약하면 모델하우스 운영 회사인 건설사에서는 한차례 연락도 방문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건설사도 화재의 피해를 입었지만 인근의 주민들이 모델하우스 불 때문에 난민신세가 되었는데 이틀동안 아무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는 때문이다. 주민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서해 유조선 기름유출 사건에 대해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던 삼성이 떠올랐다.


용산구청의 태도에 대해서도 불만이 이야기 되었다. 가뜩이나 안전도가 낮은 쪽방촌 건물에 불이 옮겨붙어 엄청난 압력의 소방호수로 불을 껐으니 건물은 그야말로 불괴 위험이 높아진 건물인데 아무 대책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다시 들어가 살으라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만약에 무고한 화재피해를 당한 수십명의 주민들이 번듯한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었어도 구청에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구청장은 화재 현장만 둘러보고 피해주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도 없다는 말을 하면서 주민들은 서운함을 내비쳤다.


용산구에는 서울역 인근 동자동, 갈월동에 쪽방촌이 밀집되어 있다.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인권단체인 동자동사랑방 관계자에 의하면 용산구에만 천 가구정도가 된다고 한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때마다 내노라하는 후보들은 반드시 쪽방촌을 들러 도시지역의 집없는 빈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처럼 약속하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포장한다. 그런데 그 때 뿐이다.

이번 화재의 피해주민들도 대부분 기초수급대상들이다. 다닥다닥 붙은 수십 가구가 공동화장실, 공동 수도, 빨래터를 사용하고 있다. 쪽방촌을 둘러보면 70년대 풍경이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이다.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는 그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할 것인가 상상이 간다.

 

이번 화재 사건에는 모델하우스보다 중요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중심에 있다. 부와 권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따지기에 익숙한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이들의 고통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건설사 분양 광고 수익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론은 건설사의 이미지에 흠이 될까 보도를 꺼릴 수도 있다. 문제가 있다.

수십 명의 이재민이 생긴 일에 구청의 재난 구호 시스템은 어디에 있는지, 피해 주민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행정체계는 어디로 실종된 것일까 의문이 든다.

경로당의 원 주인인 마을 노인들은 피해주민들이 빨리 다른 곳으로 가주기를 바라고 있다. 피해주민가운데는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있다. 비좁은 경로당에 수십 명이 언제까지 경로당 신세를 져야 할지 주민들은 불안하다.

 

동자동 사랑방 엄병천 대표는 화재가 발생한 건설사와 용산구청은 조속히 피해주민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을 마련하고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말했다.(2010.1.28)

 

*처참하게 뼈대만 남은 모델하우스와 화재당시 모델하우스 옆 쪽방 건물(출처-동자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