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농사짓는 재미
“부지런한 농부를 꿈꿉니다.”
내 다음(DAUM) 블로그의 제목이다. 그렇다고 시골 내려가 농사짓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팍팍한 서울살이 때문인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의 당연한 결과인지 몰라도 도시농업이 이른바 뜨고 있다. 물론 뜨기 전에도 동네에 화분과 짜투리 땅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 숫자가 몇 년 사이에 빠르게 늘고 있다. 도시농업 관련 시민단체가 구마다 하나둘씩 생기고 여기저기서 도시농부학교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도시농업 관련 법이 제정되고 자치단체 도시농업 지원 조례가 만들어지면서 자치단체 차원의 도시농업에 대한 재정지원, 행정지원도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보니 도시농업은 앞으로도 잘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용산에도 도시농업 관련 단체가 하나 있다. 용산 도시농업공원 추진위이다. 3년째 이 단체의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단체 이름처럼 용산에 도시농업공원을 만들어보자고 십 여 명이 의기투합했다. 2012년엔 원효로1가 리첸시아 아파트 옆의 100평 공간, 30억짜리 금싸라기 땅위에 흙을 부어 밭을 만들어서 한해 농사를 짓기도 했고 용산에서 도시농부학교도 4년간 여러 차례 개최해 100여명의 학교 졸업생을 배출했다.
*사진 노들텃밭에서 일하다가 잠시 휴식....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이후에는 한강대교 가운데 노들섬에 노들텃밭이라는 도시농업공원이 생겨서 2년 동안 그 곳에서 함께 농사를 지었다. 노들텃밭이 용산구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에 동부이촌동, 서부이촌동 등 용산사람을 포함하여 텃밭을 운좋게 분양받은 서울 사람들이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 물론 그래봐야 한 평 텃밭이다. 개인 분양 텃밭 말고 공동체 분양 텃밭도 있는데 용산공동체에는 좀 더 넓은 땅을 주는 특혜를 2년간 받았다. 2014년에도 그 특혜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도시농업은 도시에서 상자텃밭, 베란다 화분, 작은 짜투리 땅 등을 활용해 다양한 농작물을 키우면서 도시민들의 여가선용과 학생들의 교육 등 여러 가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캐나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은 1백 년 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도시농업이 발달해 왔다. 뉴욕이나 런던 같은 도시도 도시민 전체 농산물 소비 가운데 많게는 20%가 도시 안에서 생산된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그 정도 수준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나의 도시에서 농사짓기는 산천동 빌라에 살 때 옥상에 십여 개 화분에 상추, 고추, 가지 등 서너 종류의 채소를 키우면서 시작되었다. 땅에다 농사짓는 게 아니어서 말라죽지 않게 화분에 물을 자주 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이촌동 용산가족공원에 조성된 가족 텃밭을 두 고랑 분양받아 고구마도 심고 고추, 토마토를 수확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잡초 제거하고 물 주러 자주 가서 용산가족공원에서 해가 지도록 신나게 뛰어놀기도 했다.
노들텃밭은 용산도시농업공원 추진위에서 첫해는 200평을 함께 농사지었고 작년에는 100평을 10개의 공동체에 분양하여 농사를 지었다. 처음에는 자주 가다가 시간이 갈수록 가는 횟수가 드물어져서 어떨 때는 잡풀이 작물보다 무성하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 주말에 땀 흘려 농사일 하면서 준비해간 밥도 먹고 시원하게 반주로 막걸리도 마시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난 희한하게도 농사일을 하면서 땀을 흘리는 일이 너무도 좋다. 삽질, 괭이질하고 호미질하고 하다보면 끈적끈적한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안쓰던 힘을 쓰니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뻑적지근한데도 땀을 흘린 후의 느낌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좋다.
그렇다고 내가 시골출신답게 특별히 농사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농사일이 신물이 나서 전혀 생각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그 때의 기억이 좋고 힘든 경험이 승화되어 추억으로 남아 나이 들어서도 주말 농사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농사일이 참 좋다. 바쁜 삶 속에서도 내가 용산에 도시농업 단체에 참여하여 척박한 도시의 땅을 일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곳에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가는 농촌고향마을에 대한 향수를 도시농업을 통해서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네에서 편하고 즐겁게 만나 술 한 잔씩 하는 사람들은 주로 도시농업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배형택, 양일식, 권혁문, 전광철, 구평회, 김강수, 김경열, 권영신, 정해민 등 형님들, 아우들은 지금도 만나면 도시농업 초반기 시절이 제일 여유롭고 좋았다고 말한다. 그 때는 정말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몇 해 동안 용산지역에서 도시농업 관련 활동을 해왔지만 매우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다. 지금 한창 공사 중인 경의선의 지상구간 가운데 효창동의 푸르지오 아파트와 삼성래미안 사이 공간을 도시농업공원으로 만드는 걸 추진해 왔는데 우리의 노력부족, 토양 오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최종 공원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시농업공원추진위 이름과 활동이 무색하게 그 결과가 좋지 않으니 너무 아쉽다.
새해에 일식 형과 2014년에는 어떻게 노들텃밭 경작을 할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마다 땅이 부드러워지기는 하는데 거름을 어떻게 줘야 할지, 토질에 맞게 뭘 심을지도 고민하고 만나서 논의해야 한다.
올해는 비영리단체등록해서 사업비도 신청하고 단체를 안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 사무국장을 맡은 해민이 운영위원들과 합심하여 잘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도시농업은 단순히 농사일을 함께 하는 것을 넘어 농업을 매개로 서로 마음을 나누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2014년 1월 18일-보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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