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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용산을 스페인의 몬드라곤처럼 만들고 싶은 허황된 꿈

보리아빠 이원영 2014. 1. 8. 04:44

용산을 스페인의 몬드라곤처럼 만들고 싶은 허황된 꿈

 

작년 여름, 가을동안 용산생협에서 배달 일을 했다. 오토바이와 승용차로 오후4시부터 6시까지 조합원이 생협에 주문한 물건을 집까지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주로 생협매장에서 가까운 청파동, 효창동이 많았고 한남동, 후암동, 북가좌동, 아현동, 중림동도 있었다. 조합원이 집에 있는 경우도 있었고 집에 없으면 문앞에 놔두고 오기도 했다. 두시간 동안 배달이 적을 때는 두세 건도 있었고 많을 때는 열건이 넘어서 여덟시까지 초과노동을 한 적도 가끔 있었다. 승용차로 배달하다가 차량이 망가져서 부이사장님 남편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배달을 완수하기도 했다. 동명이인 조합원이 있어서 주문하지도 않은 뜬금없는 곳에 물건을 갖다놔 다시 가져다가 원위치 시키거나 과일이 물러서 약간 더 비싼 다른 과일을 사과의 의미로 전달하는 당황스러운 일도 종종 발생했다. 40만원 기름 값 제하면 시간급 6천원 정도의 배달비를 받으면서 일을 했는데 재미가 있었다. 생협을 만든 보람을 피부로 느꼈다. 착한 생산자를 위한 착한 소비를 일구어가는 생협의 친환경농산물 배달부로 자부심이 컸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일을 다른 조합원에게 넘기긴 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생협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 줄임말이다. 2012년에 2월에 용산주민들의 힘으로 용산생협을 창립했다. 조합원 300, 출자금 3천만원을 겨우 겨우 모아서 창립총회를 준비했다. 조합원 159명이 참석하여 219일에 창립총회를 성사시키고 드디어 내가 사는 용산에도 생협이 생기는 구나! 이제 우리동네에 생태적인 마을공동체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움직이겠구나!” 부푼 꿈을 꾸었다.

(참고-용산생협 창립을 마치고, 김경열 전 사무국장의 글 http://cafe.daum.net/ycoop/PAZm/11)

 

다음은 용산생협을 창립하면서 며칠을 고심해 작성한 창립선언문이다. 지금 봐도 참 잘 썼다. 어떨 때는 나도 글을 못쓰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용산생협 창립 선언문>

 

생태계의 보물창고 갯벌이 죽어가고 강 생태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북극곰이 살 곳을 잃어 방황하고 남극 펭귄의 울음소리가 눈에 보입니다. 물과 흙, 바람, 햇볕과 생명이 어울어져 살아가야 할 우리 지구별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지구별은 인간에게 더 큰 사랑을 안겨줄 것입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이 변화하면 그 뜻이 모여 커다란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시멘트 건물이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고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는 욕심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웃보다는가족을 위하여, 마을보다는 우리 집을 위하여 모든 생활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협동과 나눔의 아름다운 미덕은 찾아보기 어렵고 경쟁과 효율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너무 삭막하지 않나요?

그러나 우리는 버리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 있습니다. 웃음소리 넘쳐나는 동네,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이웃, 행복하게 마을이 함께 키우는 아이들. 우리의 꿈은 과거에 이미 조금씩 경험해 봤을 법한 것들입니다.

용산에서 우리는 생협을 만들었습니다. 생협을 통해 우리의 꿈을 함께 이루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생협은 협동의 가치를 모두가 주인되어 만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농민이 유기순환 농법으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자가 그 마음을 알아주는 식탁을 차리는 밥상 공동체입니다. 지구별 식구들이 우리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지구 저편 생명들도 생각하는 생태공동체입니다.

우리 생협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대안을 동네에서 만들 것입니다. 우리 생협의 조합원들은 착한 소비를 실천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웃들을 우리의 꿈 속으로 초대할 것입니다. 상상만 해봐도 즐거운 일, 용산생협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다함께 출발!

 

2012211

행복중심 용산 소비자생활협동조합

 

2012년에는 용산생협의 마을모임위원장, 2013년에는 생활재위원장을 맡아 일을 했다. 처음의 열정이 개인적인 조건에 밀려 열심히는 못했지만 모두의 노력으로 생협은 잘 굴러가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조합원이 1천명이 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오마이뉴스 기고글-용산생협 창립 1년만에 1천 명 가입, 놀라워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18332)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인 사업체이다. 일반 주식회사는 주식보유분 만큼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협동조합은 11표를 가지고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조합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극심한 경쟁으로 경제위기가 전세계를 몰아치자 협동조합이 새로운 경제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에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작년부터 협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활발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외국 사례를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포부를 밝혔다.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 민주적인 사업 운영, 협동조합간의 협력 등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가 잘 발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 자리를 잡으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공동체나 이탈리아의 볼로냐, 캐나다의 퀘벡 같은 전세계의 주목받은 협동조합 도시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성급하게 협동조합이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민주주의 학교'라고 하는데 그만큼 의사결정이 힘들다. 용산생협을 2년간 하면서 개인가게보다 운영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용산에서 현재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는 협동조합은 용산생협과 피어라풀꽃협동조합(직거래 반찬가게), 용산마을신문협동조합(주민이 주인인 신문) 세 군데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릴 때는 부모협동조합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1년간 어린이집 이사장을 하기도 했었다. 즐거운 추억, 힘든 과정이 많았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기사-공동육아 어린이집이사장 1년 해보니-http://blog.ohmynews.com/chamsu/459060)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협동조합 도시는 강원도 원주와 충남 홍성 등인데 주민들 숫자보다 조합원 총 수가 많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유는 한사람이 여러 협동조합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료생협, 생산자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교육관련 협동조합 등 생활적 필요와 취지에 공감하여 중복 가입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다.

 

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아직 사업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창립이야 형식적인 조건을 갖추고 인가를 받으면 되지만 운영은 사무실 임대료, 직원 인건비, 각종 운영비 등 초반 적자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세 개의 협동조합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다. 서울시에서 설치한 협동조합지원센터는 설립인가를 받기 전까지만 상담을 해준다. 그 이후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담을 받을 곳이 별로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지역 차원의 자발적인 협동조합협의체를 만드는 중이라고 한다. 개별 협동조합의 생존이 어려운 만큼 협동조합간 네트워크 형성, 지원 기금 마련, 전문교육, 각종 창립, 운영 상담 등의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업을 협의체가 추진하면 좋겠다.

 

용산은 스페인어로하면 몬드라곤이다. 용산이 몬드라곤 공동체처럼 협동조합 도시가 되었으면하는 불가능할 것 같은, 너무도 먼 미래에나 실현될 허황된 꿈을 오늘도 꾼다. (201416)